책이름 : 김포행 막차
지은이 : 박철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시인 '박철'은 '창비 1987'에 '김포' 연작 시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한 지 20년이 되었다. '창비 1987'은 비정기 간행물로 무크지였다. 그러고보니 독재정권은 '분서(焚書)'를 일삼는 것이 주특기다. 박정희 정권은 사상계를 폐간했고, 전두환 정권은 '창작과 비평'을 폐간했다. 계간지 '창작과 비평'은 어쩔 수없이 무크지로 전환하여 게릴라식으로 간행되었고, 그 무크지로 등단한 시인의 작품 성향은 당연히 현실 참여(?) 시풍이 아니겠는가. 하긴 그 시절 진보적 문인들은 '창비'를 통해 배출되었고, '창비'라는 든든한 참호 속에서 군홧발 정권에 대 들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위에서 '그 시절 창비'라는 말은 틀렸다. 정확한 년도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90년대 어느 해까지는 분명 출판사 이름이 '창작과비평사'였다. 그런데 언제인가 '창비'로 바뀌었다. 80년대 계간지인 '창작과 비평'을 정기구독하면서 우리는 그시절 운동권의 조어 방식으로 이름을 줄여 '창비'로 불렀었다. '김포행 막차'는 시인의 첫 시집으로 4부로 구성되었으며 73편의 시와 소설가 현기영의 발문이 실려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시인의 데뷔작 '김포' 연작시가 실린 '창비 1987'에 제주 4·3항쟁을 최초로 다룬 현기영의 단편소설 '순이삼촌'이 실렸다. 나는 이 시집을 어렵게 구했다. 어느 문학평론집을 잡다가 시집의 표제를 발견한 것이다. 아마! 고교시절, 낭만적 객기의 분출구로 영등포를 무대로 삼았던 한 촌놈의 자화상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비까번쩍하는 도시의 네온사인아래 값싼 희석식 소주에 취해 흐느적거리다 어쩔 수없이 '김포행 막차'를 타야만했던 아련한 향수 때문이었을까. 출간되고나서 15여년이 흘렀지만, 재판은 커녕 출판사도 옛이름을 그대로 달고있는 이 시집은 인터넷 서적에서 품절상태로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시장바구니에 담을 수 없어 리스트에 올렸는데, 나의 고집이 먹혔는 지 어느날 '품절'이라는 부스럼딱지가 없어졌다. 나는 부리나케 주문했다. 인터넷 서적과 몇 번의 전화가 오고 간 끝에 한달여 만에 나는 시집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시집은 우리의 비극적 현대사가 낳은 빨치산의 오늘을 노래하고, 서울 변두리의 가난한 소시민들의 궁핍한 일상을 그린 시들도 있었으나, 나에게는 2부에 실린 20여편의 '김포' 연작 시편들이 눈길을 끌었다. 시집을 곁에 두고 세번째 읽고 있지만, 볼 때마다 시야에 짙은 안개가 사로잡혔다. 시집이 출간된 지 18년이 다 됐지만, 우리의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시인이 노래했던 '아스팔트의 공격에 상처 입은 산천'의 김포(현재 개화동)는 이제 진짜 행정구역인 '김포'까지 먹어 치웠다. 소수의 가진 자 배때기만 불려주는 개발지상주의가 더욱 기승을 떨치고 있다. 그런데 웬걸! 자기 분수도 모르고 개발 바람이 불기만 기다리는 천둥벌거숭이들이 이 땅에는 왜 이리도 부기기수인가. 곧 설날이 다가온다. 뜀뛰기는 느리지만 친구는 힘이 좋았다. 거짓말 보태자면 발빠른 나와 백미터 달리기를 하면 반나마 쫒아올까. 그는 시멘트 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뛰는 중동 파견 근로자 시험에서 당당히 일등을 해 열사의 나라에서 3년을 버텼다. 설과 추석 전날, 전국에 흩어진 죽마고우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술판이 기다려진다. 고달프고 힘든 가대기에 지친 친구의 어깨를 위로할 겸 진하게 소주 한잔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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