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 짬뽕
지은이 : 박상우
펴낸곳 : 하늘연못
시의 한 구절 같은 제목의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의 구입 동기는 '박상우 작가수첩'이라는 꼬리표에 답이 있다. 작가후기에서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수첩에 기록된 내용은 소설작업 과정에서 얻어진 사유의 이삭들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책을 골랐다. 소설을 잡을 때마다, 분명 한편의 완성작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모태나 씨앗글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부류의 책을 여적 본 적이 없다. 작가는 뒤이어 '그것들이 재료가 되거나 양념이 되거나 반죽이 되어 소설의 피와 살이 형성된 것이다.'라고 박수를 쳐준다. 그렇다고 내가 박상우의 작품에 애착을 갖는 독자는 아니다. 고작해야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내 마음의 옥탑방'과 더불어 실린 자선작까지 두 편의 중편소설을 읽었을 뿐이다. 작가는 작품을 고독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고독으로 일상의 여백을 견디면 선연한 글발의 무늬가 떠오르고, 여백을 넓히려면 삶을 최대한 단순하고 단조롭게 만들라고 한다. 작가는 날빛이 터지는 새벽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의식의 잔흔을 정리한다. 이것이 사유의 이삭으로 작가수첩에 기록된다. 고독은 혼자일 때 가능하다. 그러기에 반짝이는 것은 작가의 고독의 산물인 상상력이다. 이 책에는 일련번호로 305개의 작가의 '사유의 이삭'이 들어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304개다. 편집 과정의 착오인 지 소설의 플롯 해체에 관한 작가의 단상이 120쪽 180번과 123쪽 184번이 겹쳐졌다.
소설을 잡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장편소설은 200자 원고지 1,200장 이상, 단편소설은 80매 내외의 분량을 말한다. 그리고 엽편소설은 10매 내외다. 그런데 박상우의 신작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30매 안팎으로, 작가는 생전 보도 못한 소설 형식을 '단막 소설'이라 이름 붙였다. 하긴 나도 새로운 소설적 형식의 분량에 구미가 당겨 이 책을 구입했다. 작가는 서문에서 그 고민의 일단을 이렇게 피력했다. '다양한 제재를 소설적 장치나 미학적 특성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이야기성만으로 살려낼 수 있는 짧은 형식으로 콩트보다 이야기성이 풍부하고 단편소설보다 편안한 형식을 개발'하고 싶었다고. 그러기에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작가의 실험성이 반영된 한국문학에서의 독창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작가는 단막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 삶의 다양성과 일상성을 반전의 묘미로 그려낸 작품 20편을 모아 책으로 묶었다.
'인생에서 얻어지는 자잘하고 소소한 재료를 지지고 볶고 삶아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씁쓸하게, 때로는 흐뭇하게, 때로는 해낙낙하게 먹을 수 있는 짬뽕 한 그릇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다. 단순명쾌한 문체에 뚜렷한 메시지를 통한 20편의 이미지를 지은이는 '짬뽕'으로 표제를 삼았다. 그러고보니 책 표지도 짬뽕 국물처럼 벌겋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 나는 짬뽕을 먹는다' 표지에 실린 카피 문구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세상이 힘들고 자신이 싫어졌을 때, 밤새 폭음을 하고는 다음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후루룩 짬뽕 국물을 들이켰던 기억을.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서, 어제 밤의 실의를 짬뽕 그릇 바닥에 몇 올의 면가락으로 남기고 뒤돌아서던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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