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처음처럼
지은이 : 신영복
엮은이 : 이승혁, 장지숙
펴낸곳 : 랜덤하우스코리아
나의 기질대로 단적으로 말한다. '신영복'이라는 이름을 모르고 삶을 살아 온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살아 온 부류에 속한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현대사의 질곡을 알면서도 애써 눈감았거나, 다른 하나는 지배계급이 교묘하게 의도한 우중(愚衆)으로서의 어쩔 수없는 현실인식의 소유자를 말한다.
저번 잡은 서두에 이어나갈 글줄기를 생각하다, 이러면 안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저자에 대한 저의 존경심 때문입니다. 여적 살아오면서 저는 나름대로 두 분의 사상적, 정신적 지주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중 한분이 신영복 선생님 이십니다. 어떻게 보면 '처음처럼'은 신영복 선생님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선생님의 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글머리가 너무 딱딱하고 고압적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술어를 높일말로 마무리 짖기로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봐도 훨씬 부드럽고, 또한 선생님에 대한 저의 존경이 조금이나마 드러나는 것 같아 한결 마음의 부담이 덜 합니다. 이 책은 표제작 '처음처럼'과 마지막 '석과불식' 등 직접 그린 그림 152점과 대표적인 글씨 36점 그리고 삶의 잠언이 어우러진 서화에세이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라 저는 선생님의 책이 출간되면 무조건 구입부터 하고 봅니다. '처음처럼'도 예약판매를 통해 올 정초에 구입해 놓고, 이제야 책씻이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출간된 선생님의 저작에 담겨진 글 중 대표적인 잠언을 '더불어 숲' 모임의 일꾼인 이승혁과 장지숙이 엮은 글들이라 제가 한번쯤 본 글귀들입니다.
선생님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20일을 복역했습니다. 여기서 장구한 세월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군사독재 시절의 양심수는 지독한 고문과 장시간의 취조로 죽음보다 더한 모멸의 연속이었습니다. 1.5평의 독방이라는 가혹한 환경속에서도 선생님의 성찰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물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98년도에 돌베개에서 출간된 증보판은 말끔하게 단장되었지만, 저는 아직도 '88년도에 '햇빛출판사'에서 출간된 초간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단 한권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 '햇빛출판사'는 급조된 것 입니다. 선생님의 글은 이렇게 힘들게 우리를 찾아 온 것입니다. 책 표지도 선생님이 가족에게 보낸 봉함엽서로 선명한 '검열필'의 잉크가 찍힌 도안이었고, 요즘 녹색평론사의 책들처럼 재생지로 만들었는지 누리끼리합니다. 아! 참 이 문제는 확실한 것 같지 않습니다. 제가 책을 소장한지가 벌서 20년이 되었으니 종이가 바랜 것인지도 모릅니다. 출소한 후 처음으로 국토여행기 '나무야 나무야'가 나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꼭 한번 손에 쥐시길 바랍니다. 우리 강화의 양도 하일리와 양사 철산리에 선생님의 발길이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98년 선생님은 생애 첫 해외 여행길에 오르고, '더불어 숲 1, 2'로 빛을 봅니다. 그리고 2004년 '강의 - 나의 동양고전독법'이 출간됩니다. 참! 신영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더불어 숲' 회원들의 이야기 모음집인 '나무가 나무에게'를 곁들여 잡으셔도 의미가 있을 것 입니다.
선생님의 그 유명한 글씨체를 '연대체'라 부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많이 보셨을 것 입니다. 바로 두산 소주의 '처음처럼'이 바로 선생님의 글씨입니다.(후문 하나, 글씨체의 사용료 1억원을 성공회대 장학금으로 전달) 마지막 글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씨 과실은 먹지않고 땅에 묻는다는 뜻입니다. 선생님은 말씀 하십니다. 처음 마음을 잃지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내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처음 글은 '처음처럼' 입니다. 다만 제게는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저작은 대부분 돌베개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처럼'은 '랜덤하우스코리아'라는 상업적 이미지로 버터 냄새가 물씬 풍기는 출판사에서 간행되었습니다. 머리말에서 말씀 하셨듯이 선생님은 이런 책을 낸다는 것에 마음이 내키지 않으셨습니다. 깊은 성찰에 따른 선생님의 글에 걸맞지 않는 화려한 종이박스 포장과 부록 마음노트가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도 사실 입니다. 알찬 내용과는 달리 형식적 드러내기처럼 보일수도 있다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멀리하는 세태에서 어떻게든 가까이하는 다가섬으로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의 의심 한 자락을 지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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