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

대빈창 2007. 12. 27. 10:10

 

 

책이름 :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

지은이 : 조정환·정남영외

펴낸곳 : 갈무리

 

이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는 조정환·정남영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 전부라고 해야 한다. 보길도 시인 강제윤이 보내 준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를 잡으면서 '노동해방문학'을 떠올렸고, 검색창에 나는 '조정환'을 두드렸다. 18여년 전 그 세월, 나는 월간지 '노동해방문학'에서 사회변혁과 민중문학의 이론을 자양분으로 현실의 모순을 해부하고, 실천 방향의 지남철로 삼았다. '노동해방문학'은 참여문학으로서 문학운동의 주류였던 '민족문학론'에 맞서 노동자 계급의 당파성을 제창한 문학운동이었다. 하지만 90년 말경 '조정환'은 '잠수'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전국지배 수배령이 내려 9년여의 수배생활에 들어갔지만, 그의 '잠수' 생활은 오히려 '발견적 모색'이라는 전환점을 맞는다. 9년여 간의 연구와 사유가 민중운동의 '자율주의로의 선회'라고 말할 수 있는 탈근대화 시대의 '다중네트워크'를 통한 사회변혁이론이다. 파시즘에 맞서 민중의 혁명적 열기가 활화산처럼 터지던 80년대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노동해방문학'의 주창자인 저자가 탈근대화의 정보사회에서 사회변혁을 모색하면서 겪은 변화를 이해하려면, 두가지 개념을 알아야 한다. 먼저 '카이로스'로 포착할 기회, 놓쳐서는 안될때, 붙잡을 줄 아는 결단'으로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민중'이 '다중'으로 변신한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개념이고, '노마드'는 '구축된 코드와 관습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하는 변혁주체의 변화된 양태'를 이해해야 한다는 시대변화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조정환은 '민중'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이렇게 진단한다. 60년대 개발정책으로 전통적 농민이 사라졌듯, 80년대 산업 재구조화로 산업노동자가 사라지고 있으며, 이에 90년대 들어 한국에서의 산업노동자 헤게모니가 급속하게 쇠퇴되었다. 여기서 노동조합이 사회혁명을 추동하는 전투조직에서 동업적 이익집단으로 전락한 것은 자본의 효율적인 이데올로기 공격의 효과로만 볼 수 없다. 다른 요인은 초국적 자본에 의해 노동의 관계망과 분업이 전 지구적인 것으로 변했다. 금융자본에 이어 생산자본, 더군다나 이주민에 의한 노동력도 쉽게 국경을 넘는다. 따라서 농민에서 노동계급으로의 이행이 급격하고 철저하게 진행되었듯 노동계급에서 다중으로의 이행도 마찬가지다. 이 지점에서 문학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자기갱신을 요구받는다. 이것이 문학평론가 '가리타니 고진'이 절망적으로 말한 '근대문학의 종언'이다. 즉 민중의 소멸이 가져온 필연성이다. 그렇다면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은 오히려 '다중'에 의한 문학 진화의 새로운 계기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한 현단계 문학상황을 진단한 것이 이 책에 실린 좌담과 9편의 평론이다.

'다중'시대에서 '민중과 만나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민중이 되는 것,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살로서 스스로 변형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탈근대화 시대의 문학의 진화를 얘기하는 저자들의 패러다임에 나는 당혹스럽기조차 하다. 스스로 민중이 되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의 하부구조인 경제에서 생산수단없이 노동력을 팔아 임금으로 생활하는 자들의 계급적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민중과 다중의 개념에서 벤다이어그램은 얼마나 될까? 또한 새로운 삶을 창조한다는 것은 계급의식의 각성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80년대적 개념을 빌리자면 '다중' 속에는 다수의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포함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중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가? 굼뜬 나의 현실인식이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회변혁의 주체세력에 대한 모색으로 그 맹아를 찾아나선 저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어떻게 '삶을 창조하고 살로서 스스로 변형시킬 수 있는가?' 다중네트워크의 형성은 요원하게만 보인다.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각개 격파된 개별적 존재로서. 그러기에 방법적 대안이 절실하다. 절망을 넘어 환멸에 빠진 대부분의 다중(?)들에게 서광(瑞光)은 언제 쯤 비칠  것인가. 아니 보이지도 않는 빛을 스스로 찾아 나가야만 하는 현실이 암울하다. 이 암울한 현실의 표면을 미끄러지듯 탈주하는 요즘 문학세계의 상상력, 익살, 해학은 어느 평론가가 말했듯 '독박'을 쓸 수도 있다. 고스톱 판에서 말하는 '독박'을. 한국문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 말이 기우에 그치기를 나는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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