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바리데기
지은이 : 황석영
펴낸곳 : 창비
한 여름에 읽었던 '신화의 역사'에서 나는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잠깐 언급했다. 다음달 책을 잡겠다던 혼자만의 약속이, 차일피일 미루어지는 동안 벌써 4개월이 흘렀다. 그러니깐 책을 구입하고, 딴 짖거리에 열중이었다는 소리다. 위 책 이미지의 소녀가 주인공 '바리'다. 맨발에 무릎을 덮은 주름치마를 입었다. 반소매 블라우스 차림의 바리는 쌍꺼풀이 없는 전형적인 몽골인의 골상을 지니고 있다. 머리는 염색을 했는 지 엷은 브라운 색이다. 차라리 검은 머리칼이 어울릴 것 같은데. 하지만 흐릿한 뒷 배경이 런던으로 보이는만큼, 역경속의 바리가 변화하는 모습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바리의 이미지가 풍기는 청순미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TV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밀랍인형 같은 천편일률적인 섹시미를 강조하는 세태에서는. '바리데기'는 무가의 내용에 따르면 '바리'는 '버린다'의 뜻을 갖고, 접미사 '데기'는 부녀자를 낮춰 가리키는데서 유래한다. 즉 '부엌데기', '소박데기'로 알 수 있다.
소설 속 고난에 찬 바리의 여정을 지켜보는 나의 가슴은 물먹은 스펀지처럼 먹먹해져 갔다. 연약한 바리가 겪는 인생사는 가난한 자는 굶어죽을 자유밖에 없는 현재의 추악한 신자유주의라는 세계 체제의 모순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고립에서 오는 북한의 기아문제,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랜드·보트 피플, 9·11 테러, 아프카니스탄·이라크 전쟁, 런던 지하철 테러 등. 황석영 소설의 힘이랄까. TV에서 본 현대사의 비극보다 헐씬 참혹하다. 또한 리얼하게 가슴에 와닿아,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마음을 울린다. 적나라한 북한 참상에 대한 묘사의 힘은 북한을 직접 방문한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왔을 것이다.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작가의 북한방문기를 20여년 전에 본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언제인가 말했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대표작가로 주저없이 황석영을 손꼽는다. 학창시절 작가의 단편 '객지'를 읽으면서 나는 얼마나 분노에 흽싸였던가. 그 시절만 해도 본격적인 민중소설의 출현은 먼 얘기였다. 하지만 뛰어난 작가는 단초를 열어 젖힌다. 6·70년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못가진 자, 힘없는 자, 못배운 자들은 고향에서 강제로 막장과 노가다 판으로 떠 밀려났다. 미래는커녕 최소한의 생조권조차 박탈당한 그들의 삶을 작가는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보며, 그 눈물나는 일용직 노동자(인력시장에서 매매되는 잡일꾼)의 저항을 우리에게 들려 주었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비정한 자본의 폭력에 동혁이 마지막에 다이너마이트를 입에 물고 성냥을 손에 쥐는 장면이.
책 말미에 인터뷰 '분쟁과 대립을 넘어 21세기의 생명수를 찾아서'가 실렸는데, '바리가 구한 생명수와 분열과증오와 죽임의 21세기 지구촌에서 생명의 길'에 대한 답을 피하면서 작가는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되묻는다. 자기 앞가림에 눈코 뜰 새도 없는데, 얼어죽을 무슨 생명수라고 푸념을 내 뱉을 수 있지만, 세계화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일개인의 삶도 민족국가 단위인 국경을 넘어,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라는 체제에 돌입하면서 극단적인 양극화로 침몰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로빈슨 크로스가 아니라면 이러한 현실에 나도 어쩔 수없이 묶여 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소설 '바리데기'를 읽으며 답을 고민할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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