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달려라 냇물아

대빈창 2007. 12. 4. 14:01

 

 

책이름 : 달려라 냇물아

지은이 : 최성각

펴낸곳 : 녹색평론사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 우리가 어렸을 때 불렀던 동요의 한 구절이다. 환경운동가로서의 내력을 살핀 꼭지를 표제로 삼은 이 책은 소설가 최성각의 환경산문집이다. 작가는 강릉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지는 돼지를 키우고, 어린 아들은 리어카에 '짬밥'을 실어 나른다. 어느 초여름 돼지가 새끼를 쳤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중 한마리를 동해로 흘러가는 냇가에 집어 던지는 것이 아닌가. 이유는 새끼돼지 13마리가 태어나 그중 무녀리 한마리를 도태시킨 것이다.(어미 돼지의 젖곡지는 12개다) 어린 소년은 저녁을 먹고 가족 몰래 동해로 향하는 십리길 둑방을 걷는다. 달도 없는 어두운 밤만큼이나 초조한 마음으로. 철조망에 옷이 찢기고, 날카로운 바위에 피가 터지고. 하지만 새끼돼지의 가련한 생명에 대한 소년의 짠한 마음은 아픔을 모른다.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다 어름. 기적적으로 새끼돼지의 애잔한 울음소리가 갈대밭에서 들렸다.(시골뜨기들은 이런 가축에 대한 마음아픈 추억이 한가지 씩은 가슴 한켠에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어릴적 우리집도 돼지를 먹였다. 가난하기 짝이 없는 소농 집구석에서 그래도 목돈을 만질수 있는 유일한 돈줄이 돼지가 새끼를 낳는 것이다. 그때 돼지는 왜그리 새끼를 많이 쳤는지. 밤중에 탯줄을 끊은 아버지는 안방 아랫목 큰 함박에 헝겊쪼가리를 깔고 백열전구을 켜 새끼돼지들에게 온기를 제공했다. 다음날 뒷다리를 움켜쥐고 한마리씩 엉덩이를 들여다보던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셨다. 항문이 막힌 무녀리가 눈에 뜨인 것이다. 아버지가 방을 나서면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송곳으로 어림짐작한 부위를 눈감고 찔렀다. 안타깝게 창자만 자꾸 비어져 나오고, 새끼돼지는 아버지 손에 버려졌다. 얼마나 새끼돼지가 안스러웠던가.) 그 어두운 밤 가슴에 어린 생명을 안고 둑방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어린 소년이 40년후 환경운동가의 진정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소설가 최성각이다.

산문집은 모두 54개의 글꼭지로 이루어졌고, 7개의 장으로 나뉘었다. 표지사진의 거위 두마리는 '맞다'와 '무답'이다. '99년 환경단체 '풀꽃세상'의 창립에 주역을 맡고, 단체가 제 발걸음을 떼자 회원들에게 넘긴 뒤 작가는 강원 춘천 퇴골에 '풀꽃평화연구소'를 개설한다. 자연히 뱀의 출몰이 잦아 대책으로 거위 두마리를 기른다. 자기를 키워주는 주인의 은혜에 보답하는 거위들을 보며, 나는 이 시대의 인간군상들의 더러움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나의 가슴에 가장 큰 울림을 전한 것은 네팔여인 '찬드라 꾸마리 구릉' 사건이다. 꾸마리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대신섬유공업에 입사해 일하다가, 93년 11월 실종된다. 그런데 6년 4개월 후 용인정신병원에서 발견되는, 이 땅의 한심한 몰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매일 신문을 도배질하는 인면수심의 사건들로 이 땅의 국민들은 무감각에 대해서 대표선수이지만, 이 사건은 해도 너무한 충격 그 자체였다. 사건의 진행과정은 차치하고라도 우리사회에 만연한 행정편의주의, 인종주의(강한 자에게는 비굴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기 그지없는), 관료주의의 합작품이다. 사건 후 대한민국의 양심을 대표하여 지은이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산군의 산마을인 찬드라 꾸마리 구릉의 고향을 찾아가 사죄한다. 책씻이 후 나는 몸과 마음이 바빠졌다. '풀꽃세상'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나니, 지리적 여건상 회원으로서의 활동에 문제가 있었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나의 처지를 얘기하고, 차라리 '풀꽃평화연구소'를 후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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