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호모 코레아니쿠스
지은이 : 진중권
펴낸곳 : 웅진지식하우스
박노자가 정치·역사라는 양날의 칼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해부한다면, 진중권은 미학·철학이라는 세밀한 메스로 한국인을 탐사한다. 표제인 '호모 코레아니쿠스'(Homo Coreanicus)는 극단적이고 압축적인 근대화로 전근대, 근대, 탈근대를 한 몸에 담고있는 한국인의 자화상을 가리킨다. 개발독재 시대의 압축 성장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인터넷 인프라가 세계 제일을 자랑하듯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이행과정이 서구에 비해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탈근대가 진행중인 급변하는 한국사회에서 저자는 한국인의 자화상을 해부하는 개념으로, 우리에게 낯익은 국민성, 정체성을 폐기처분하고 하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끌어 들인다. 우리말로 '습속'이라고 번역되는데, 특정 성원들의 사고방식, 감정구조, 행동양식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설명하면 인간은 공통의 유(類)적 특성을 가지나, 민족·시대에 따라 특정 생각, 느낌, 반응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일컫는다. '호모 코레아니쿠스'는 탈근대화가 급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정보사회에서 농경·산업사회의 유물인 전근대성, 근대성이 한국인의 몸에 어떻게 내장되어 작동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서구인들은 문명화 과정을 통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바뀌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습속에는 전근대적인 양반문화가 살아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귀족문화가 시민적 내용으로 변용된 서구와는 달리 동양에서는 형해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교양이나 예법은 방기되고, 자신의 혈통적 고귀함을 하위계층과 구별하려는 열성이 오히려 천박성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 -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의 부재다. 즉 자기의 위치에 따른 책임을 자각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윤리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한번 눈 씻고 들여다보라. 천민자본주의에서 상층 집단은 오히려 '의무을 망각한 신분집단'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은가. 대선이나 총선에 입후보한 자들의 자랑스러운 면면이라 것이 고작, 아들의 군 입대 기피, 위장 전입, 땅 투기로 긁어모은 과도한 재산, 주가조작 의혹 등이지 않은가. 그러기에 항간에서는 범죄자들의 화려한 자기경력(?)을 소개하는 쇼로 보는 것이다. 한 예로 선진국들의 사학 재단들은 기부금 형식으로 공동체의 선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막말로 학생들의 머리수가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는 돈다발로 취급되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그들의 의무방기 행태는 몇 쪽에 걸쳐서도 끝이 날 것 같지 않다. 더군다나 내 입만 더러워질 뿐이다. 그들의 천박한 졸부근성은 정신적, 문화적 격조가 아닌, '명품'으로 신분적 차이를 드러내려 하고, 대중은 '짝퉁'으로라도, 그 차이를 지우려 노력한다. 이 땅의 명품 문화는 한국식 자본주의의 천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인터넷 인프라가 세계 최고라는 우리 사회는 이미 정보사회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속도를 뒤쫒지 못하는 내용의 부제는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한 위험을 안고있다. 예를 들어 '전문적인 정보기술(IT) 등 첨단정보와 새로운 기술, 직업에 자유자재로 적응할 수 있는 고도의 문서 해독 능력'을 지닌 사람은 2.4%로 형편없다. 또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의 문서해독 능력도 OECD 국가 중 조사대상 22개국 중 자랑스럽게 꼴지였다. 대중매체에서는 인터넷 강국으로 호들갑을 떠는 데 도대체 내용이 없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인터넷 인프라가 우리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서유럽이지만, 그들은 인터넷 망을 연구·개발 목적으로 이용한다. 반면 전 국토를 거미줄처럼 덮은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한 한국은 게임·오락에 광(狂)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쉽게 말해서 한국은 기본이 허술한 정보사회(빛 좋은 개살구)다.
대선이 내일이다. 포털 사이트를 열자마자 돈 많은 후보자들의 배너광고가 눈을 어지럽힌다. 후보자들도 그 대단(?)한 네티즌들의 힘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황우석 사태와 디워 논쟁을 지켜 보면서 그들의 익명성 뒤에 몸을 숨긴 다수의 횡포가 두렵기조차 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중이 문화적 발언의 주체로 나서는 것 자체는 진보적이나, 대중이 그 힘을 소수의 견해를 억압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반동적이다.' 즉 사이버 공간에서의 대중 독재를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실의 모순을 바로 보지 못할 때, 영웅의 환상을 쫒는 질곡에 스스로 빠질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황우석 사태 당시 그 진실을 밝힌 MBC의 'PD수첩'에 가한 맹목적 애국주의의 늪에 빠진 네티즌들의 광분을, 또한 심형래의 '디워'에 대한 그들의 영웅(?) 출현에 대한 도착적 짝사랑(?)을. 이 시대 다수의 네티즌들의 현실 인식은 이러한 무뇌아적 환상을 쫒을 수밖에 없는가. 서글프다. 진실에 접근하는 노력조차, 매국노로 전락되는 대한민국의 그 잘난 인터넷 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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