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밥상 위의 안부

대빈창 2012. 5. 10. 05:22

 

책이름 : 밥상 위의 안부

지은이 : 이중기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식민지 농민’, ‘숨어서 피는 꽃’, ‘밥상 위의 안부’, ‘다시 격문을 쓴다’ 농민시인 이중기의 시집들이다. 너무 멀리 에돌아왔다. 나의 학창시절 80년대는 농업, 농촌, 농민에 대한 시가 곧잘 눈에 뜨였다. 하지만 지금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이 시집도 노가다 시인 유용주의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를 뒤늦게 잡고서 찾을 수 있었다. 그 산문집을 잡고 나는 철지난 시집 몇 권을 손에 넣었는데, 그중 한권이었다. 시집을 펼친다. 출판사 이름을 보아도 묵은 시집인 것을 알 수 있다. 2001년에 초판이 발간되었다. 10년도 넘었다. 발문은 전남 담양 시인 고재종이 도왔다. 시인은 경북 영천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 영남 농민시인의 시집에 호남 농민 시인이 발문을 단 보기 드문 시집이다. 제길헐! 시집도 이 땅의 농민 꼬라지다. 10년 전에 모습을 보인 시집이 여적 초판본이다. 약자에게 극악스러울 정도로 모진 한국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촌·농민시를 쓰는 몇 안 돼는 시인이다. 농산물을 개방해서 자동차, 반도체, 휴대폰등 공산품을 파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비교우위론자들이 농정을 펼치는 이 땅에서 농민시인의 절규가 들릴 수밖에 없다.

 

게릴라전을 펴는 비교우위론에서/쌀은 굶주린 자의 빛나는 희망이 아니라/살아남을 자의 생애를 대변합니다

소말리아의 죽음잔치는 인간의 예언입니다(비교우위론에 대한 경고. 전문 / 72쪽)

 

 시집에는 4부에 나뉘어 59편의 시가 실렸는데 파산으로 치닫고 있는 농촌현실에 대한 시인의 분노가 응어리졌다. 시편들 곳곳에는 농업, 농촌, 농민의 죽음들이 널려있다. 참혹한 오늘날의 농촌은 죽음과 빛 잔치의 절규만 들려 온다. 수년 째 빛과 절망에 못이겨 자살하는 농민의 수가 1년에 1,000명이 넘는다. 하루에 3명꼴이다.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자살율 1위인 한국 평균의 2배다. 현재 농민수는 300만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농가의 평균연령이 환갑에 가깝다. 이러니 아기울음 소리가 들릴리가 있겠는가. 농가부채가 4,000만원이 넘어선지가 옛날이고, 더 암울한 것은 그나마 농촌을 이끌고 나가는 몇 안되는 3, 40대 농민의 농가부채는 1억이 넘는다. 그러기에 작년 농가소득은 도시가구의 65%에 지나지 않았다. 영세고령농가들은 이 땅의 유일한 사회안전망인 연금보험에 가입돼있지 않은 경우가 70%에 이르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혜택을 누리는 농민은 전체 7%도 안된다. 농가부채, 야반도주, 자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농촌 현실은 아수라지옥이다. 과연 농민이 무지하고 게을러서 시장경쟁력이 없는 것인가. 비교우위론자들이 펼치는 농정에 고령의 농민들은 아스팔트에 나설 수밖에 없다. 더 참혹한 것은 이제 아무도 농업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농업은 이제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한미FTA가 발효되고, 뒤이어 한중 FTA가 얼굴을 들이밀면 이 땅의 농민은 극소수의 선도농가나 취미농만 남을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몇 안 남은 이 땅의 농민들은 ‘밥상 위의 안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밥상 위에서 안부를 묻습니다/우리에게 나라는 무엇입니까/흑백의 거친 폐허를 거처로 삼은 사람들이/북만주나 외몽고에 전세 들고 싶은 날,/생인손을 앓는 목민심서 문장 속으로 들어가니/토사곽란의 길 끝에 잘 늙은 절 하나,/시줏돈은 색주가에 다 퍼날렸는지/俗때 묻힌 대웅전은 장엄하나/요사채는 기울어 덧쌓인 폐허입니다(밥상 위의 안부 2연, 48 ~ 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