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대빈창 2012. 4. 30. 04:53

 

책이름 :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지은이 : 이면우

펴낸곳 : 창비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 아홉/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 짜기를 나는 안다/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거미(10 ~ 11쪽)’의 2연이다. 시인은 거미가 다가오는 겨울을 새끼들과 함께 나기위해 필사적으로 그물을 짰을 것을 아는 나이 마흔아홉이다. 이 시집은 2001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십여년도 더 지난 이제야 나는 묵은 시집을 뒤적였다. 시인은 이제 환갑이 되었다. 이 시집을 구하게 된 것도 2000년에 초판이 발간된 시인 유용주의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를 작년에 뒤늦게 잡고서였다. 마지막에 실린 글 ‘거미가 짓는 집’은 이면우 시인에 대한 단상이었다. 글을 여는 시 ‘거미’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인은 중학 때 백일장에 나가 상을 휩쓸었고, 문예장학생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생활고는 학교를 포기하고, 열일곱에 손공구를 쥐게 만들었다. 보일러 공으로 입에 풀칠을 했다. 시간은 흐르고, 생활전선에 매달린 동생에게 큰형이 어느날 박용래 전집을 보냈다. 백번 쯤 읽자 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대전의 어느 공장 보일러공이었던 그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뒤늦게 본 아들에게 ‘시인’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사장이 낌새를 채고 휴가를 내주었다. 그는 한권 분량의 시를 썼고, 사장이 사비로 첫 시집을 출간해 주었다. 지방출판사에서 펴낸 첫 시집 '저 석양’이다. 정치권 못지않은 중앙집중화된 문단에서 지방도시 보일러공의 시집 운명이란 빤하지 않은가. 시집은 폐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운이라고 말해야 옳다. 다행히 눈 밝은 이에게 뜨여, 문단에 알려지고 창비에서 시집을 내게 되었다. 두 번째 시집인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다. 그리고 이어 ‘그 저녁은 오지 않는다’를 펴냈다.

시집에는 모두 59편의 시가 3부에 나뉘어 실렸다. 시집은 시인에게 제2회 노작문학상을 안겨 주었다. 여기서 ‘노작(露雀)’은 ‘나는 왕이로소이다’로 유명한 홍사용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문학상이다. 시인은 수상소감으로 “시는 내 가난과 내면의 억눌림이 분출하는 비상구였고 지금도 생활의 고난이 나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이 내 시를 읽고 마음이 풍족해진다면 나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시인의 시가 생활과 삶에 깊숙이 천착된 것을 두고, 시인 나희덕은 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인의) 시들은 부유하는 이미지들에 길들여진 우리의 눈을 고요한 개안(開眼)에 이르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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