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역사의 미술관
지은이 : 이주헌
펴낸곳 : 문학동네
나는 지금 미술관 티켓 두 장을 가지고 있다. 한 장은 내가 구입한 것이고, 다른 한 장은 얻은 티켓이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큐레이터 미술평론가 이주헌이 전시를 기획했다. 내가 구입한 티켓은 전시를 한지 꽤나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나는 얻은 티켓을 먼저 사용하기로 했다. 내 책장에는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데뷔작인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 2’를 비롯하여 20여권의 미술교양서가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즉 요즘 말로 ‘파워라이터’ 이주헌의 마니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먼저 전시를 연 미술관은 ‘지식의 미술관’이고, 나중에 문을 연 미술관은 ‘역사의 미술관’이다. ‘지식의 미술관’은 책을 구입한지가 2년이 넘었지만, 여적 나의 손을 타지 못했다. 그런데 ‘역사의 미술관’은 최근에 출간되었다. 주민자치센터의 구비도서로 내가 선택한 몇 권의 책 중의 한권이었다. ‘남의 떡이 커’보이는 법인가. 아니면 자기 것은 아껴두며 천천히 음미하고픈 욕심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역사의 미술관’에 발을 들여 놓았다. 크게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었다. 제1전시실 ‘산은 높고 골은 깊다’는 역사를 이끌어간 인물을 그린 그림들이 중점 전시되었다. 알렉산드로스, 아우구스투스, 나폴레옹 같은 영웅과 루이 14세, 이반 뇌제. 스탈린 같은 독재자도 등장한다. 제2전시실 ‘History 속의 Herstory'에는 부침하는 역사 속에서 강한 여인상을 심어 준 클레오파트라와 퐁파두르 부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여성이 대상 또는 도구화된 매춘과 오달리스크에 관한 그림이 전시되었다. 제3전시실에 ’역사는 피를 먹고 자란다‘에는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사건과 피에 대한 역사의 증언으로 전염병, 왕들의 처형, 일차세계대전을 키워드로 한 그림을 전시했다. 마지막 방인 제4전시실 ’정신의 역사, 역사의 정신‘에는 카리스마, 종교개혁, 그리스의 지성, 다비드의 역사화, 네이처리즘 등 인간의 이성과 정신 영역의 진화 과정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서양의 역사화를 이렇게 규정했다. ‘보편적인 가치와 교훈, 영웅적인 모범을 표현한 휴먼드라마다. 종교, 신화, 전설도 얼마든지 역사화가 될 수 있다’고. 서양인들은 ‘인간의 드라마에 열광’하여 서양미술에서 역사화를 최고의 장르로 발달시켰다. 반면 우리 옛 선인들은 자연을 소요하며 그 섭리를 그린 산수화를 발달시켰다. 이렇듯 관심사가 서로 달랐다.
우리는 흔히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블라디미르 세로프’의 1947년 작 유화 ‘소비에트의 권력 장악’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미술은 스탈린 치하에서 공식화되었다. 볼셰비키 혁명을 대변한 미술은 재현이 아닌 추상적인 아방가르드 미술이었다. 볼셰비키 혁명에 적극 가담한 미술가들은 아방가르디스트로 혁명성공 후 슈테렌베르크, 말레비치, 칸딘스키, 타틀린 등이 전위적인 미술을 앞세웠다. 아방가르드 미술이 혁명정신에 부합하고 주제 표현에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 민중의 눈에 난해하기만 한 전위미술의 대중성에 문제의식을 느낀 독재자 스탈린은 진보적 미술가들을 숙청시켰다. 이에 미술가들은 해외로 망명하는데 칸딘스키가 독일로, 샤갈이 베를린으로 떠났다. 곧 전위미술이 밀려난 자리에 과거의 리얼리즘 미술이 똬리를 틀었다. 차르 숭배 이미지가 스탈린 숭배 이미지로 되살아난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미래가 그때 이미 혁명 후 미술의 변화에 나타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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