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올레, 사랑을 만나다

대빈창 2012. 4. 2. 05:40

 

책이름 : 올레, 사랑을 만나다

지은이 : 강제윤

펴낸곳 : 예담

 

강정(江汀) 마을 해안가를 ‘구럼비’ 통 바위가 감싸고 있다. ‘구럼비’는 길이 1.2km, 너비 150m에 달하는 한 덩어리의 거대한 용암너럭바위다. 제주 사람들은 이 바위를‘구럼비’ 바위라 부르고, 인근 바다를‘구럼비’ 해안이라고 했다.‘구럼비’는 이 지역에 ‘구럼비낭’(제주말로 구럼비 나무)이 많아 붙여졌다. 강정마을 일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이다. 제주도가 세계자연유산에 선정되었다고, 모든 미디어를 동원해 홍보 난리굿을 친 지가 언제라고, 중앙정부와 군당국은 구럼비 바위를 발파시켰다. 해군기지를 건설한다고. 현재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은 아수라장이다. 도대체 국가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국가 폭력의 안하무인에 치가 떨린다.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개발에 대한 광신은 무소불위의 위용을 자랑한다. 나는 책장을 덮으면서 피골이 상접한 시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시인은 고향 보길도에 귀향했으나, 토건국가의 만행은 그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고산의 유적지와 섬의 하천을 시멘트 구조물하려는 세력에 맞서 시인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33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그들에게 항복문서를 받아냈다.

이 책은 2010년 6월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시인은 지금 어느 섬을 걷고 있을까. 시인이 섬을 떠 돈지가 8년이 되었다. 나는 시인을 두 번 만났다. 90년대 중반 보길도를 여행하면서 시인이 운영하던 ‘동천다려’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술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2007년 여름, 내가 살고 있는 주문도의 선창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했다. ‘사라져가는 섬의 문화, 전통, 자연, 삶의 모습을 기록해야 한다’며 10년 동안 사람이 살고 있는 남한의 500여개 섬을 걷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내가 살고 있는 서해의 작은 섬을 찾은 시인과 우연히 조우한 것이다. 섬을 걸으면서도 고맙게 시인은 티베트 여행기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를 나에게 소포를 보냈다. 세월은 흐르고, 섬 순례기가 출판되기 시작했다. 1권 ‘섬을 걷다’, 2권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손에 넣었으나, 게으른 나는 아직 책을 펼치지 못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제주 올레길 여행기인 이 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섬을 순례하던 중 시인은 제주 올레길에 반해 1년을 서귀포에서 체류했다. 제주 올레의 풍광도 풍광이지만,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의 발걸음을 붙들었다. 폭풍의 화가 변시지, 청도 운문사 진광과 현우 스님, 사전수전 다 겪은 15세 선장 출신의 김성일, 끈질긴 집념으로 원수 집안의 여자와 결혼한 가파도 이장 김동옥, 올레 교감 선생님 한산도, 집시적 삶의 종착지로 제주도를 선택한 연예인 출신 화가 유퉁, 올레길 이방인 데럴 쿠드와 트레이시 베럿, 5·18 시민군 출신 민주화 운동가 진희종 , 허름한 30년 국수집 춘자싸롱의 아낙네 그리고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과 조폭 보스 출신의 올레 탐사대장 서동철 등.

언제인가 나는 제주 올레를 걷고 있을 것이다. 나의 발길이 제주도에 닿은 것은 ‘88년 여름이 유일하다. 그때의 추억을 반추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져야겠다. 조교 형과 학부생 4명은 여름방학동안 전국일주로 14박15일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름 하여 ’건국의 혼‘ 충청과 전라의 해안을 따라가다 목포에서 제주행 배에 올랐다. 젊은 일행은 돈이 궁했다. 그때 제주 시내에는 공원이 눈에 뜨이질 않았다. 첫날 묵을 곳을 찾던 나의 눈에 제주 kal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그 시절 제주도 유일의 호텔이었을 것이다. 여름의 긴 해가 꼬리를 감추고 어스름이 찾아 들었다. 호텔 수위실 턱이 높았다. 나는 포복으로 정문을 통과하며 후배들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호텔 골프장 의 잔디밭이 시원하게 펼쳐져있었다. 일행은 잔디 위에 텐트를 설치하고 첫날의 고단한 몸을 풀었다. 잠결에 눈이 부신 나는 눈가를 부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손전등 불빛이 내 얼굴을 정면으로 쏘아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야간순찰 중이던 경비원께 발각된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경비원은 마음이 너무 좋으셨다. 윗사람이 보면 난처하다고 우리 일행을 경비원 숙소로 데려가 잠까지 재워주고, 이른 새벽 깨워주기까지 하셨다. 그 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학창시절 제법 알아주던 술꾼이었던 나는 그때 제주도의 소주 ’한일‘을 처음 입에 대었다. 80년대만 해도 지역을 대표하는 소주가 있었다. 서울·경기 - 진로, 강원 - 경월, 충북 - 백학, 충남 - 선양, 대구 - 금복주, 전북 - 보배, 전남 - 보해, 부산 - 대선, 마산 - 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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