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천국과 지옥의 결혼

대빈창 2012. 4. 4. 06:00

 

 

책이름 : 천국과 지옥의 결혼

지은이 : W. 블레이크

옮긴이 : 김종철

펴낸곳 : 민음사

 

 시집을 잡은 세월이 오래지 않았다. D.H 로렌스와 프리모 레비의 시집은 책장에서 먼지만 뒤집어 섰다. 강화도에 나가는 배 시간을 죽이려고 시집을 펼치기 시작했다. 국내 시인들의 생태와 농촌에 관한 시편들이었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세계시인선 시집 두 권을 손에 넣었다. 워즈워스의 ‘무지개』가 그중 한 권이었다. 녹색평론을 들추면 가끔 인용되던 워즈워스의 시집을 손에 넣은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블레이크는? 녹색평론의 발행인 겸 편집장 김종철의 해설이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그런데 블레이크는 나에게 시인보다 판화가·화가로 먼저 인식되었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단테의 신곡(지옥·연옥·천국) 3권의 삽화는 블레이크의 그림이었다. 책장을 일별헸다. 노성두 이주헌의 명화읽기에 윌리엄 블레이크가 소개되었다. 도판으로 태초뉴턴이 실렸다. 두 그림 모두 창조주와 뉴턴이 컴퍼스를 들고 있다. 창조주는 컴퍼스로 세상을 창조하고, 뉴턴에게 컴퍼스는 이성과 과학의 도구였다. 블레이크는 컴퍼스를 부정적인 지혜의 상징으로 그렸다. 그의 화풍은 파격적인 화풍으로 신비롭고 복잡한 상징성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블레이크의 생몰년도 1757년 ~ 1827년이다. 18세기 영국은 봉건귀족 사회에서 근대시민사회로의 전환기였다. 워즈워스, 셸리, 키츠 등 낭만주의 시인들은 기계화된 생산과 시장 경제의 확립으로 위축된 인간성의 회복을 노래했다. 윌리엄 블레이크가 가장 선구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시인의 정직하고 비타협적인 기질은 외롭고 불우한 삶의 연속이었다. 18세기 유럽은 계몽주의 시대로 이성과 합리주의 가치가 존중되었다. 블레이크는 사회질서가 인간에게 참된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기쁨을 빼앗고 인간을 노예화시킨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진보하는 과학문명이란 복잡한 합법적인 야만세계로 역행하는 폭력의 지배’라는 것을 블레이크는 그 시절 벌써 알았을지 모르겠다. 〈런던〉은 날카로운 현실 비판적 시로 지배 권력의 질곡을 폭로했다. 〈굴뚝 청소를 하는 아이〉는 아동노동 착취라는 18세기 영국 사회의 도시적 삶의 어둠을 그려냈다. 그리고 〈나는 황금의 교회당을 보았다〉와 〈천국과 지옥의 결혼 서시〉는 유순한 원시 기독교와의 비교를 통해 타락한 현대 기독교를 풍자했다.

시인은 이성과 합리주의 시대에 신비주의와 낭만주의로 거슬러 살았다. 그러기에 ‘인간 본래의 신성함과 자유를 억압하는 인습에 반발하여 영혼의 해방’을 노래했다. 생태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눈에 익은 시구가 자주 인용되었다. 그 시의 원문을 나는 시집에서 찾아냈다. 마지막은 블레이크의 이념이 가장 감동적으로 표현된 시 「순수의 전조(前兆)」의 1·2연이다.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며 / 한 송이 들꽃에 천국을 본다. /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새는 / 천국을 온통 분노케 하며, / 주인집 문 앞에 굶주린으로 쓰러진 개는 /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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