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내 노동으로
지은이 : 신동문
펴낸곳 : 솔
내 노동으로 / 오늘을 살자고 /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 머슴살이하듯이 / 바친 청춘은 / 다 무엇인가. / 돌이킬 수 없는 / 젊은 날의 실수들은 / 다 무엇인가.
표제시 ‘내 노동으로(64 ~ 66쪽)’의 도입부다. 녹색평론의 서평에서 시인을 처음 만났다. 2004년 솔에서 시인의 전집이 출간되었다. 시집 ‘내 노동으로’와 산문집 ‘행동한다 그리고 존재한다’ 두 권 이었다. 나는 시집부터 손에 넣었다. 시인에게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뇌리에 입력된 60년대 저항시인은 그동안 김수영과 신동엽 뿐이었다. 시인은 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연작시 ‘風船期’로 등단했다. 원래 ‘풍선기’는 53호로 총 1,700행의 장편시였는데, 한국전쟁의 혼란의 와중에 분실하고, 남은 시편을 1호부터 20호로 고친 작품이다. 전선의 기상관측병이던 시인의 체험이 담긴 연작시였다. 이후 4.19 혁명을 노래하고,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저항시들을 남겼다. 시인의 유일한 시집인 ‘풍선과 제3포복’은 우리 문학사에서 반전반핵 문학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세 번의 필화사건을 겪었다. '64년 경향신문 특집부장으로 ‘남한의 식량부족을 북한의 쌀을 들여 와 타개’ 하자는 독자 건의를 게재하였다고 중정에 끌려갔다. ‘75년 창작과비평의 대표로 있으면서 리영희의 ’베트남 전쟁은 반제국주의 독립전쟁‘이라는 글과 신동엽 유고시집의 ’진달래 산천‘이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한 달 새 두 번을 남산 중정에 끌려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밤에 혼자서 시를 쓴다든가 엘리엇을 읽는다든가 할 것이 아니라 어디 시골이나 가서 한 열 평 밭뙈기라도 장만하여, 남들이 잘 안하는 미나리 농사나 왕골 농사를 개량재배해서 미끈한 줄거리로 자라나게 한다든가,
‘散文 또는 生産(44쪽)’의 일부분이다. 5.16 군사정권과 맞섰던 시인은 '75년 ‘바둑과 홍경래’를 끝으로 시와 서울 생활을 접고, 충북 단양 애오개로 내려와 야산을 개간해 농장을 열었다. 그리고 독학으로 침술을 익혀 민중을 위한 인술을 펼쳤다. 자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작금의 문단을 돌아보며 나는 삶이 곧 시였던 시인의 뼛속을 애는 칼칼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시인도 제 역할을 빼앗겨 지금은 원고지와 팬과 시장이 없이는 존재이유를 말할 수 없게 되었어. 시인은 동물표본실의 박제 신세가 되었고, 시는 시장에서 매매되는 상품으로 남게 되었지. 시는 현실의 삶으로부터 멀어졌고, 심지어 시인과도 겉돌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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