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주문도의 망종(芒種)

대빈창 2014. 6. 9. 05:57

 

 

 

주태배기 앞집 형이 횡설수설 말을 늘였습니다. 꽤 오래 묵은 일인데 형은 진저리를 칩니다. 어느 해 망종 무렵이었습니다. 일찍 찾아 온 더위로 뱃일을 하다 갈증을 못이기고 무인도인 분지도에 뗏마를 댔습니다. 무인도의 수량이 풍부한 샘은 알만한 어부들의 목을 축여 주었습니다. 형은 말통을 들고 샘가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기겁을 하고 뒤돌아 배로 뛰어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섬에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누런 구렁이가 샘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며칠 전 아랫집 할머니가 구렁이를 다시 봤습니다. 할머니는 상합을 캐러 대빈창 해변에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리 때라 제방 앞까지 찰랑거리는 물살을 따라 아름드리 통나무가 떠 내려왔습니다. 아! 그런데 석가래보다 굵은 누렁구렁이가 나무에 올라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말씀은 업구렁이였습니다. 구렁이가 무인도에서 통나무를 타고 주문도 봉구산으로 이주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엊그제가 24절기 중 아홉 번째인 망종(芒種)이었습니다. 여기서 망(芒)은 가시랭이를 뜻합니다. 벼·보리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로 모내기와 보리 베기에 알맞은 때입니다. 대빈창 다랑구지 들녘의 모내기가 막 끝났습니다. 물이 찰랑찰랑한 논에 모가 줄맞추어 심겨졌습니다. 산들바람에 한들거리는 연약한 모지만 며칠 지나면 새까맣게 거름끼가 올라올 것입니다. 대빈창 마을의 농사짓는 막내가 환갑이 넘었습니다. 트랙터로 논을 쓸리고, 이앙기로 모를 내고, 콤바인으로 벼를 베고 말립니다. 농기계가 없으면 농사는 엄두도 못 냅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어진지 오래인 섬 농사는 누가 이어갈지 생각만으로 아득해집니다. 

옛길도 시멘트로 포장되었습니다. 길은 대빈창 해변에서 시작되어 논밭의 경계를 지으며 봉구산 자락을 타고 느리 마을로 이어집니다. 산비탈의 밭마다 검정비닐이 씌어졌습니다. 고추 모종 심기는 끝났고, 고구마 정식도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밭곡식을 심고 거두느라 온 식구가 매달렸던 시절이 언제였던가요. 대처로 나간 자식들이 쉬는 날 고향에 돌아와 늙은 양친을 도와 간신히 밭일을 마쳤습니다. 고추 농사는 불안합니다. 태풍이 몰고 온 비바람에 역병·탄저병으로 고춧대가 폭삭 주저앉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고춧가루 없는 김장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수월한 밭작물이 고구마입니다. 비닐을 씌워 잡초를 잡으면 비료나 농약을 타지 않습니다. 늦가을 수확 때 사람 품이 많이 드는 것이 흠이지만, 이웃과 품앗이로 그럭저럭 거둘 수 있습니다.

계절이 늦는 섬은 아카시아 꽃이 이제 지기 시작합니다. 개복숭아 열매가 손톱만큼 자랐습니다. 초록으로 우거진 산중에 구슬픈 짐승 소리가 끊어지질 않습니다. 올무에 걸린 고라니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입니다. 한 생명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