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그리운 이웃은 마을에 산다
지은이 : 이호신
펴낸곳 : 학고재
이 책은 편집과 제본에 출판사의 정성이 깃들여 독자의 마음을 풍족하게 한다. 다소 책값이 비싸 보이지만 요즘 출판 행태인 양장본으로 만들지 않고도 얼마든지 소장도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오래전 서울 변두리 서점의 주인이 보여 준 정성으로 나는 20여 년이 훨씬 지난 그 시절 구입한 책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우리소설모임'이라는 민중계열의 작가들이 엮은 '소설 창작의 길잡이'로 '풀빛'에서 나왔다. 겉표지는 짙은 녹색이었는데 가운데 표제 부분만 노란 바탕에 검은 고딕체로 새겨져 있었다. 책을 고르자 주인은 투명 비닐로 책을 포장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보기에도 미끄러운 감촉으로 그 작업은 영 불편해 보였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 왈 '장마철이라, 손님이 책을 잡다가 비에 젖을까봐서.' 그때 정황이 떠오른 것은 이 책에도 겉표지에 한겹 비닐이 제본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 책 이미지가 선명하지 못하고, 조금은 흐릿하게 보이는 이유다. 말이 나온 김에 표지 그림부터 설명하자. 허공에 소나무 가지가 길게 드리우고, 그 아래 소풍나온 사람들이 돗자리 위에서 음식을 들고있다. 영주 소백산 사천마을 사람들과 화첩기행 온 지은이가 성황당 앞 풀밭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본문 그림은 성황당을 중심으로 근경에 거대한 소나무와 멀리 느티나무가 서있는 풀밭에 일행이 앉아있다. 하지만 앉아있는 일행의 머리 위에서 그늘을 드리우는 소나무 가지가 그림에는 없다. 조형이 아름다운 노송은 몇해 전 가지가 부러졌다.아마! 화가는 마을 사람들의 살가운 인정에 대한 고마움을 조선시대 김홍도의 유명한 '송하맹호도'에 등장하는 소나무 가지를 끌어와 그늘을 드리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호가 검은돌(玄石)인 이호신은 한국화가다. 여기서 '한국'은 지은이의 국명이 아닌, 그림의 장르를 가리킨다. 이 책의 부제는 '붓길 정겨운 산골기행'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해안마을도 3곳이나 소개된다. 제주 산방산 대정고을과 월라봉 감산마을 그리고 화가의 고향인 영해 칠보산 인량·괴시마을이다. 모두 서른 곳의 전통과 문화, 자연을 지키며 살고있는 우리 이웃의 모습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것이 이 책이다. 이웃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편안한 문체와 손에 잡힐 듯한 풍광을 담아내는 탁월한 붓 솜씨에 독자는 한번 책을 손에 잡으면 한눈을 팔 수 없다.그러기에 나의 책장에는 지은이의 저서가 거의 다 갖추어져 있다. 저자는 그동안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세계를 모색하고 문화유산과 자연생태를 답사(길에서 쓴 그림일기, 숲을 그리는 마음)하고, 사찰 순례(풍경소리에 귀를 씻고)를 해왔으며, 아프리카와 인도 등 다른 문화권에도 눈을 돌려 우리 삶의 근원과 정체성을 찾는 작업(쇠똥마을 가는 길, 나는 인도를 보았는가)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 '다시 지피는 가마의 꿈' 챕터에 등장하는 영암 월출산 구림마을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낸 '달이 솟는 산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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