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사시사철
지은이 : 최용탁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미궁의 눈(2007년, 삶이 보이는 창 - 소설집)
즐거운 읍내(2010년, 삶이 보이는 창 - 장편소설)
사시사철(2012년, 삶이 보이는 창 - 산문집)
내가 잡은 작가 최용탁의 책들이다. ‘4년 전, 처음 집을 나가서 지낸 곳이 여수의 바닷가 빈집이었다. 아는 이 하나 없고 이웃조차도 없는 그 집에서 한 달여를 지내며 여러 소중한 경험을 했다.’(95쪽) 작가는 해마다 한두 달씩 집을 나오는 가출(?)을 감행했다. 첫 가출은 소설집 「미궁의 눈」을 낳았다. ‘때로 질펀한 성애 장면 이야기를 하며 교실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192쪽) 분명 장편소설 「즐거운 읍내」의 한 장면 이야기다. 자식들을 성장시키고 늦은 나이에 한글을 깨우치는 할머니들의 모임인 종로 ‘어머니학교’에서 강연 중 한 모습이었다.
투명 비닐봉투에 담긴 책을 빼 들었다. 작은 종이봉투에 티켓이 두 장 들었다. ‘제 2회 저작걸이展 OPENING : 2012. 5. 22(화)’ 그해 4월 초판 책을 급하게 손에 넣었다. 하지만 이제 책갈피를 펼쳤다. 작가는 충북 중원에서 태어나, 충주댐 건설로 고향을 잃은 수몰민이었다. 미국 이민생활 중 故 윤한봉 선생을 만나 한청련 회원으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반대’ 유럽 파견 문화선전대원 활동에 대한 기억이 ‘유럽의 기억’에 담겼다. 95년 작가는 고향 근처에 정착하고 과수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고 있다. 소설가 공선옥의 「미궁의 눈」 표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최용탁은 농부다. 내가 먹어본 중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복숭아 농사를 짓는다. 그리고 최용탁은 작가다. 그는 농사지으면서 소설을 쓴다.’ 5장에 나뉘어 실린 64편의 이야기는 FTA 직격탄을 눈앞에 둔 농촌의 어려운 현실과 사라져가는 애달픈 고향 풍경이 그려졌다. 작가는 그 속에서 콩을 심고, 참깨를 털고, 고추를 따고, 감자를 캐고, 사과 잎을 따주고, 복숭아를 수확한다. 표지 그림은 농부가 호미를 쥐고 뒷짐을 진 채 밭으로 들어서고 있다. 햇살 따사로운 어느 봄날, 멀칭 비닐을 뚫어 바람을 맞히자 하늘거리는 마늘 싹과, 구멍 난 비닐마다 일일이 호미로 흙을 덮어주는 작가농부가 떠오른다.동년배로서 나는 작가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책읽기였다.
‘근래에 내가 맛본 산짐승은’(92쪽) 덫에 치인 고라니가 밭에 내려 온 것을 고향 친구가 엉덩이 살로 육회를 만들었다. 고라니가 숨을 거두기 전 멱을 따 박카스를 들이붓는다. 피가 굳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섬주민들은 고라니의 고기보다 뼈를 진짜로 친다. 올무에 걸려 죽은 고라니는 산속에 낙엽을 덮어 방치한다. 살이 물러 뼈만 남으면 한나절을 곤다. 관절염에 특효라는 알지 못할 믿음 때문이다. ‘지느러미를 드러내고 노니는 잉어와 그들을 쫓으며 삽자루를 내려치는 어른들의 모습’(244쪽)은 큰물이 물러나면서 논둑만 드러낸 논 가운데에서 새풀 내를 맡고 올라 온 잉어를 잡는 풍경이다. 나의 고향인 통진의 한강 지류에서 모내기철이면 어린애만한 잉어가 잡혔다. 산란철을 맞은 잉어들이 보름달이 뜬 밤이면 강을 거슬러 올라와 수초에 지느러미를 드러낸 채 알을 낳았다. 감각으로 잉어의 지느러미가 흐느적거려, 달빛이 비친 물살의 작은 일렁임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예리한 눈을 가진 이만이 가능한 잉어잡이였다.
리뷰에 마침표를 찍고 나는 티켓을 종이봉투에 넣어 책갈피에 끼우고 비닐봉투에 책을 다시 쟁여 책장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사시사철 2」가 기대되었다. 2권은 분명 녹색평론사에서 출간될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산문이 정기구독하고 있는 녹색평론의 통권 131호(2013년 7 - 8월)부터 빠짐없이 연재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가는 농촌이라는 터전이 단말마의 고비에 처해 있다는 것, 어쩌면 인간의 건강성과 흙에 대한 추억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마지막 인사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는 절박함이 조금이라도 전해졌으면 좋겠다.’(6쪽) 작가의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향의 현실에 무심하다. 농촌이 죽어가고 있는지 땅이 병들었는지 관심 없다. 그저 돈이면 만사형통이다. 다만 설날과 추석 년중 두 번 회귀하는 연어처럼 고향을 찾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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