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빌뱅이 언덕

대빈창 2015. 3. 4. 07:04

 

책이름 : 빌뱅이 언덕

지은이 : 권정생

펴낸곳 : 창비

 

책은 선생의 5주기를 맞아 출간되었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 시인 안상학은 머리말을 대신한 글에서 재단이 존속하는 한 선생의 전집을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선생이 평소 여러 출판사들이 먹고 살아야한다는 이유로 전집 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10여년 전에 잡았던 「우리들의 하느님」에 얽힌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그 시절 MBC에 책을 소개하는 <!느낌표>라는 프로가 있었다. 추천된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작가는 억대를 넘는 돈방석에 앉았다. 방송사 PD는 선생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런데 선생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이유는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꿈을 실어 주겠다는 자신의 글이 천박한 상업주의에 휘둘리는 것에 대한 단호한 거부였다. 선생은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이 ‘새싹문학상’을 빌뱅이 언덕에 와 직접 전해주자, 다음날 상패와 상금을 소포로 되돌려주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은 1937년 도쿄 변두리 시부야의 빈민촌 셋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거리 청소부, 어머니는 누비옷 삯바느질, 형과 누나는 공장 노동자, 작은 누나만 소학교에 다녔다. 도쿄 폭격으로 아홉 살 때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1946년 4월 부모의 고향나라 한국에 온 것이 8년 7개월만이었다. 나뭇짐 장사, 양계장, 가게 점원을 하다 1953년 겨울,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났다. 거지 생활로 연명하다 4년 뒤 늑막염과 폐결핵을 앓는 몸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1968년 2월 경북 안동 일직면 조탑동의 교회종지기로 교회 문간방을 얻어 살았다.

1983년 「몽실언니」 계약금으로 받은 돈으로 빌뱅이 언덕아래 두 칸짜리 오두막을 지었다. 마흔 중반에 이르러 처음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했다. 표제이기도 한 「빌뱅이 언덕」아래 오두막에서 선생은 깜장깨알만한 똥과 가끔 오줌을 싸는 생쥐와 동거했다. 밤마다 감나무에 찾아오는 부엉이, 방문을 두들기고 가는 살쾡이와 더불어 2007년 작고하시기까지 선생은 이 땅의 어린이를 위한 글쓰기로 일관하셨다. 90여권의 책에서 들어오는 연간 1억원의 인세를 굶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으셨다.

책의 1부는 선생의 자전적 산문 4편이 실렸고, 2부와 3부는 일제식민지, 해방, 남북분단, 한국전쟁, 군사독재, 산업화의 극악스러울 정도로 모진 한국현대사에서 소외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생태와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들의 욕망 등을 비판하는 산문 39편 그리고 부록으로 시 7편과 동화「30억의 잔치」가 실렸다. 나는 3부에 실린 권위주의·물질만능주의·신비주의에 사로잡혀 예수를 돈과 우상에 팔아넘긴 한국교회의 타락을 통렬한 목소리로 신랄하게 비판한 「김 목사님께」, 「다시 김 목사님께 1」, 「다시 김 목사님께 2」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선생은 기독교 신자로서 이렇게 한탄했다. “목사와 장로는 직분이 아니라, 명예가 되고 계급이 되고 권력이 되었다.”  글이 무거워졌다. 마지막은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머무는 선생의 시 한편을 소개한다. 「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2」(335쪽)의 전문이다.

 

도모코는 아홉 살 / 나는 여덟 살 / 이 학년인 도모코가 / 일 학년인 나한테 / 숙제를 해 달라고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 윗집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 도모코는 나중에 정생이한테 / 시집가면 되겠네 / 했다.

앞집 옆집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두 쳐다보는데서 / 도모코가 말했다. / 정생이는 얼굴이 못생겨서 싫어요!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 도모코 생각만 나면 / 이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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