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북극 얼굴이 녹을 때
지은이 : 최승호
펴낸곳 : 뿔
‘북극 얼음이 녹을 때’ 덜렁거리는 나의 착각이었다. 새삼 시집을 들고서야 ‘얼음’이 아닌 ‘얼굴’인 것을 눈치 챘다. 하긴 북극의 얼굴은 빙하이지 않겠는가. 이제 그 얼굴을 볼 날도 멀지 않았다. 2050년을 전후해 북극 빙하가 모두 녹아내릴 것이라는 암울한 진단을 받은 호모사피엔스가 정신을 차리기에 이미 시간이 늦었는지 모르겠다. 시대는 지구온난화가 초래한 이상기후가 일상화되었고, 아픈 지구는 스스로 기후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매미, 개미, 문어, 먹장어, 아귀, 왕코브라, 곰치, 낙타, 눈다랑어. 순록, 이, 쌍봉낙타, 흰올빼미, 박쥐, 인어, 개, 검정과부거미, 나비, 고래, 게, 삼엽충, 갯강구, 갈매기, 왕게, 늑대, 열대어, 산호, 사자, 까마귀, 고양이, 쥐, 갈치, 바다코끼리, 바다표범, 개구리, 도마뱀, 지네, 뱀, 맘모스, 야광충, 거머리, 파리, 새우, 코뿔소, 개미핥기, 흰개미, 잉어, 황금사자원숭이, 가물치, 구렁이, 흑염소, 코끼리, 빈대, 기린, 메뚜기, 꽃게, 하루살이, 다람쥐, 익룡, 딱정벌레, 하마, 독수리, 장수하늘소, 들신선나비, 송장헤험치개, 청호반새, 반딧불이, 메기, 소금쟁이, 거북이, 펭귄, 검독수리, 들소, 연어, 두꺼비, 굴뚝새.
"최승호는 '동물농장'의 시인이다." 문학평론가 이경호의 작품해설 - '최후의 인간'을 후려치는 '햇빛' - 의 첫 문장이다. 시편들에 등장하는 동물이다. 여기서 인어, 삼엽충, 맘모스, 익룡을 굳이 넣어야했는가 의문이지만. 시집은 3부에 나뉘어 71편의 시작(詩作)이 실렸다. 최승호의 시편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제재가 동물이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시인의 시집들은 ‘동물백과사전’ 이다. 생태시선집인 「코뿔소는 죽지 않는다」와 「반딧불 보호구역」에 실린 '이것은 죽음의 목록이 아니다'에 등장하는 생물상은 모두 711 개체였다. ‘나도꼬마하루살이’(70 ~ 71쪽)의 4연은
한국의 하루살이들 이름은 참 아름답다. / 나는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적어본다.
그리고 5연은 하루살이 74종을 열거했다.
시집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미지는 ‘동물’로 여기서 동물들의 활력은 현대 자본주의 도시의 타락한 현실과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폭력과 부패를 상징한다. 그러기에 붉은 색 속표지는 동물의 고깃덩어리나 피를 연상시켰다.
굴뚝새. 이 새는 고산족(高山族) 소년 같다. 여름에는 높고 시원한 바람 속에서 또래들이랑 지내다가 눈보라 휘몰아치는 겨울이면 산 아래 마을로 피신한다. 밤이면 굴뚝 곁에서 잠을 자고 낮이면 먹을 걸 찾아 마을의 집들을 돌아다니는 새.
마지막 시 ‘굴뚝새의 기나긴 겨울’(93쪽)의 부분이다. 나는 여기서 시인의 첫시집 「대설주의보」의 표제시를 떠올렸다. 3연은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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