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따뜻한 외면

대빈창 2015. 9. 11. 05:32

 

 

책이름 : 따뜻한 외면

지은이 : 복효근

펴낸곳 : 실천문학사

 

시인의 약력을 살피니 지리산 아래에 살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20여 년 전 천왕봉을 바라보며 지리산자락을 며칠간 답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구례의 화엄사와 연곡사. 남원의 실상사. 산청의 남명 유적, 함양의 농월정과 정자들을 떠돌았다. 시집은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4부에 나뉘어 63 시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이경수의 「온몸으로 길을 만드는 물고기처럼」이다. ‘따뜻한 연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남다른 관찰력과 삶에 대한 통찰력’을 시에 담았다고 평자는 말했다.

 

물고기 / 달팽이 / 바지락 / 자작나무 / 종이컵 / 공벌레 / 소쩍새 / 장작 / 매미 / 폭포 / 물방울 / 새 / 은행나무 / 수련 / 거울 / 목련 / 우산 / 산토끼 / 개망초 / 타이어 / 밤꽃 / 어머니 / 뚱딴지 / 옥룡사지 / 딱따구리 / 박새 / 국화 / 개

 

시편들의 소재는 일상 속에서 쉽게 와 닿는 것들이다. 「참돔」은 소설가 한창훈이, 「눈 연습장」은 시인 이원규와 문인수가, 「로또를 포기하다」는 시인 이정록이 등장한다. 「전망 좋은 곳」의 한 구절은 ‘연암은 광활한 요동을 지나며 울기 좋은 땅이라 했다’다. 뒤이은 시 「압록강 감자꽃」과 「고야」의 부제는 ‘신열하일기 1’과 ‘신열하일기9’다. 여기서 ‘고야’는 ‘묏대추’로 야생대추였다. 시 「어머니, 여자」의 부기는 - *2011년 8월 13일 어머닌 다른 세상으로 가셨다. 새 몸을 받아 아기로 태어나셨을까 - 다. 저 세상으로 떠나가신 어머니에 대한 시는 「하늘님의 요실금」, 「호박오가리」, 「쭈글쭈글」, 「당신」, 「고려장」, 「하늘님의 동기간」 모두 7편이 실렸다. 시인의 어머니는 요실금과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시다 먼 길을 떠나셨다. 나는 무엇보다 시인을 생태주의자로 읽었다. 자연 생태의 한 순간을 묘사한 표제시 「따뜻한 외면」(43쪽)의 전문이다.

 

비를 그으려 나뭇가지에 날아든 새가

나뭇잎 뒤에 매달려 비를 긋는 나비를 작은 나뭇잎으로만 여기고

나비 쪽을 외면하는

늦은 오후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나비는 새의 먹이다. 늦은 오후 비를 비해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나뭇잎에 앉아있는 나비를 외면한다. 여기서 새의 무심함은 나비에 대한 천적이 아닌 따듯한 배려로 관계 지어졌다. 새의 눈이 시인의 눈이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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