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달의 아가미
지은이 : 김두안
펴낸곳 : 민음사
작년초에 시집을 손에 넣었다. 최근 가장 가까이 하는 책들이 시집이다.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으로 2009년에 나왔다. 시집은 3부에 나뉘어 20편씩 60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문혜원의 「진중하고 차가운 언어에 담긴 비극적 리얼리티」다. 꽤 오래전 일이다. 함민복 시인과의 술자리였다. 시인은 김포도서관의 시창작 강의를 반추하고 있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시인 부부는 그 시절 선생과 제자의 인연이었다. 아무튼 그때 시인은 동막 해변 부근 폐가를 월세 10만원에 얻어 살았다. 시골의 교통 사정은 어디나 딱하기가 매한가지였다. 시인은 하루에 네댓번 있는 군내버스로 온수리 면소재지까지 나가 김포행 버스를 이용했다. 두세시간 강의가 하루를 꼬박 잡아먹었다. 강의 시간에 쫓기는 시인을 몇 번 내 차편으로 김포도서관까지 함께 했다. 그 시절 시창작 수강생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소주잔을 털어 넣는 시인의 마음 한 구석이 뿌듯했으리라. 어느 날 불현 듯 시인과의 술자리가 떠올랐고, 시집을 손에 넣었다.
닻을 주고 밧줄을 맨다 // 부두에 부딪히지 않게 / 썰물에 목매달지 않게 // 배가 / 파도를 넘을 수 있도록 // 느슨하거나 / 팽팽하지도, 않게 // 바람 불면 말뚝 꽉 조여야 하는 / 떠날 때 단숨에 확 풀려야 하는 // 밧줄 // 아버지는 / 닳아 / 부드러워진 / 길을 부두에 맨다
‘밧줄’(49쪽)의 전문이다. 함민복 시인은 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뻘에 걸린 배를 등으로 밀어 본 사람이다. 상체의 힘에 의존하여 손으로 배를 밀 때의 한계를 체득한 사람이다.’ 함민복 시인은 뻘에 말뚝박는 법을 시로 쓰지 않았는가. 시인은 전남 신안 임자도가 고향이었다. 2부 시편들의 배경은 포구다. 대명포구 서해상회, 새벽 묵호항 눈, 임자도 마방촌, 목섬, 대머리 포구 등 이름이 정겨웠다. 김 양식하는 섬을 떠난 시인은 공장 노동자를 거쳐 나의 고향인 김포에 삶터를 꾸렸다.
이웃섬 볼음도 나들길 민박집. 출입문 바람벽의 현수막이 해를 넘기고 있었다. 2014년 조갯골 해변 - 김포지역 시모임 〈詩냇물〉의 여름캠프. 나는 내 멋대로 유추했다. 분명 책장에 잠들어있는 「달의 아가미」를 펴낸 김포에 사는 시인이 속한 동인이 틀림없을 거야. 시인이 여기서 묵어갔구나. 민박집 앞집이 볼음도 만수형네 집이다. 총각시절 함민복 시인이 머리를 식히러 섬에 들러 나와 소주잔을 나누던 집이었다. 나의 머릿속 인연은 이렇게 연결되고 있었다. 김포도서관에서 인연을 맺은 두 시인. 밤하늘의 달에서 한 시인은 아가미를, 한 시인은 장아찌를 보았다. 한 시인은 아기의 심장 뛰는 소리를 밥밥밥밥······으로 듣고, 한 시인은 아기의 열 개의 손가락을 어머니 뱃속의 은혜입은 달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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