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제국호텔
지은이 : 이문재
펴낸곳 : 문학동네
1판 5쇄 | 2012년 12월 17일. 펼친 시집의 출간일이다. 나는 이 시집을 두 번 손에 넣었다. 이른 봄꽃이 앞 다투어 화사함을 뽐내고, 연두빛 부드러움이 시야에 아른거리던 80년대 후반 어느 초봄. 후배와 나는 내륙 소도시의 호반을 걷고 있었다. 호수가는 가벼운 옷차림의 상춘객들로 붐볐다. 다소 북적거리는 인파를 피해 우리는 저류지 샛길로 접어들었다. 그때 저 멀리 신축한 건축물의 상호가 시야에 들어왔다.
- 임페리얼 호텔 -
“제길 헐 호텔 이름이 제국이라니.”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치기어린 분노를 쏟아냈다. 그 시절 우리 손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원전을 펼쳤다.
그때 기억이 되살아났다. 1판 1쇄 | 2004년 12월 10일. 나는 함양 덕유산 외딴집의 후배를 찾았다. 고속버스에서 읽을거리로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을 찾았다. 그때 나의 인식은 생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15여 년 전 호반을 걸었던 후배와의 추억과 표제『제국호텔』이 연결되었을 뿐이다.
“형, 시집 읽을 만 해.”
후배의 한마디에 이틀 묵은 산속 집을 떠나면서 책장을 가득 메운 시집에 한권을 더 얹었다. 후배는 학창시절부터 알아주던 문청이었다. 산골 오두막 생활은 마음에 드는 신간 시집 한 권 손에 넣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은 흘렀고, 시인은 생태주의자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시인은 동향이었다. 나는 10년 만에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을 다시 손에 넣었다. 편집광적 강박증이라고 해도 할 말 없다. 시인의 다섯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산문집이 책장에서 어깨를 겯었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62편이 실렸다. 발문은 고종석(한국일보 논설위원)의 「제국에서 달아나기, 제국에 맞서 싸우기」다. 시집의 제국은 우리 시대의 상징으로 정보 네트워크를 가리켰다. 시인은 탈제국을 꿈꾸었다. 즉 네트워크로부터 절연이다. 군소리 하나. 논설위원은 고리타분한 문단의 보수적 꼰대 냄새가 난다. 나에게 고종석은 이 땅에서 보기 힘든 진정한 자유주의자 칼럼니스트가 제격이었다. 표사를 쓴 이들도 마음에 들었다. 『어린 당나귀 곁에서』의 시인 김사인과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이었다. 2부에 실린 부제만 다른 다섯 편의 연작시 「제국호텔」이 소제목이면서 표제였다. 마지막은 「파꽃」(93쪽)의 전문이다.
파가 자라는 이유는 / 오직 속을 비우기 위해서다 / 파가 커갈수록 / 하얀 파꽃 둥글수록 / 파는 제 속을 잘 비워낸 것이다
꼿꼿하게 홀로 선 파는 / 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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