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지은이 : 승효상
펴낸곳 : 컬처그라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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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여행길에서 만난 건축과 삶의 풍경을 기록한 인문 에세이로 25개 꼭지에 등장하는 건축물과 도시와 폐허다. 책장 한 칸을 차지한 건축가들의 책에서 저자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건축가는 먼저 나에게 ‘빈자의 미학’과 ‘노무현의 무덤’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상하게 저자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후회가 들었다. 서둘러 저자의 다른 책 돌베개에서 나온 『건축, 사유의 기호』를 책바구니에 넣었다. 건축가 승효상의 인생은 두 시기로 나누어졌다. 건축가 김수근 문하의 ‘공간’ 식구 15년과 건축철학 ‘빈자의 미학’을 전면에 내세운 독자적 건축가로서의 20여년이었다. 여기서 빈자의 미학은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닌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을 가리켰다. 건축가 사무실의 현판은 이로재(履露齋)다. 가난한 선비가 이른 아침 이슬 내린 길을 밟으며 연로한 노부의 처소에 문안을 드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건강한 건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성찰로 이어졌다. 책갈피를 열자 시(詩)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박노해의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다. 책의 제목을 시에서 빌려왔다. 건축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시가 노래하고 있었다. 오래된 것, 가난한 것, 선한 것, 검박한 것, 비워진 것 ······.
나의 눈길이 가장 오랜동안 머문 꼭지는 「‘불확정적 비움’ - 마당 깊은 집」과 「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우리 선조들이 일군 집들의 마당은 공동체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 행위가 끝나면 다시 비움이 되어 사유의 세계로 인도했다. 건축가는 한국전쟁 피란시절 일곱 가구가 모여 살던 부산 구덕산 기슭 마당 깊은 집의 풍경을 떠올렸다. 나는 가난하지만 넓은 황토마당을 가진 초가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연부락 이름은 한들고개였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외따로 자리 잡은 우리 집 마당에 서면 드넓은 김포들녘이 눈앞에 펼쳐졌다. 남향의 터 넓은 양지바른 마당에서 동네 꼬맹이들은 사시사철 비석치기, 구슬치기, 술래잡기로 해지는 줄 모르고 하루를 보냈다. 늦가을이면 어른들이 모여 벼타작을 했고, 찬바람 부는 계절이 돌아오면 곱은 손을 녹이며 이엉을 묶었다. 건축가의 철학 ‘빈자의 미학’은 서울의 달동네 골목길에서 각성되었다. 달동네의 골목길은 가파른 산비탈로 사람이 오가는 길만이 아니라 빨래터도 되고, 애들 놀이터며, 물물교환 시장도 되었다. 가진 것이 적어 나누어 살 수밖에 없는 공동체를 이루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천민자본주의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숨 막힐 듯한 아파트를 산비탈에 빼곡하게 세웠다. “이것은 건축이 아니다. 우리에게 가해진 심각한 테러행위이며 범죄다. 분개할 수밖에 없다.” 건축가의 시각이었다. 촌놈이었던 내가 서울가서 묵을 곳은 사촌집 약수동 달동네 밖에 없었다. 길눈이 어두웠던 나는 숙부댁을 찾아갈 때 마다 골목을 잃어 헤매기 일쑤였다. 이제 서울 달동네 골목길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이 땅의 개발이고 발전이고 번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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