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밀물의 시간

대빈창 2015. 12. 24. 07:00

 

 

책이름 : 밀물의 시간

지은이 : 도종환

펴낸곳 : 실천문학사

 

고두미 마을에서(1985년) / 접시꽃 당신(1986년)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1988년) /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1989년) /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년) /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1994년) / 부드러운 직선(1998년) / 슬픔의 뿌리(2002년) / 해인으로 가는 길(2006년) /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2011년)

 

시인이 지금까지 펴낸 10권의 시집과 출간년도다. 시선집은 도종환 시인의 모든 단행본 시집 10권에서 가려 뽑은 99 시편을 묶었다. 내게 시인은 - 전사통보를 받은 언청이 누나, 흑인 혼혈아 여가수, 조선정신대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삶을 껴안은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와 아내와의 사별을 가슴 아프게 노래한 80년대 대표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던 거리에서 80년대를 보냈던 내게 애틋한 서정시는 값싼 낭만으로 치부되었다. 세월은 아주 많이 흘렀고 서해 작은 외딴 섬에 삶터를 꾸렸다. 시인의 가장 대중적인 시를 꼽으라면 「담쟁이」와 「흔들리면서 피는 꽃」 이다. 한국시인 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친숙한 시인의 시집 한 권 책장에 없다니. 2년 전 「담쟁이」가 실린 『당신은 누구십니까』를 손에 넣었다.

시인의 삶은 어린 시절의 혹독한 가난과 아내와의 이른 사별, 참교육 쟁취의 투옥과 복직, 지역·시민·민주화 운동으로 점철된 고난의 나날이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 앞에는 아름다운 서정을, 뒤에는 굽힐 줄 모르는 의지를 두고 끝내 그것을 일치시키는 시인” 이라고.

시인의 등단 30년을 기념하여 후배 문인 시인 공광규, 김근, 김성규와 문학평론가 유성호가 시를 選했고, 해설을 썼다. ‘도종환 시력 30년’이라는 부제가 붙은 - ‘고두미 마을’에서 ‘별 하나’에 이르는 단호하고도 정결한 ‘길’- 은 당연히 문학평론가의 몫이었다. 해설은 이렇게 끝났다. “굳이 100편을 채우지 않은 것은, 시인이 마지막 한 편을 더하여 자신의 시적 생애를 채워 주시기를 바랐기 때문” 이었다. 마지막은 「부드러운 직선」(142 ~ 143쪽)의 일부분이다.

 

뒷산의 너그러운 능선과 조화를 이룬 / 지붕의 부드러운 선을 보라 한다 / 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 / 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 / 몇 발짝 물러서서 흐르듯 이어지는 처마를 보며 / 나는 웃음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 /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 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 / 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잡아 / 지붕을 받치고 있는 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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