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대빈창 2015. 12. 18. 07:00

 

 

책이름 :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지은이 : 손택수

펴낸곳 : 창비

 

가령,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에 모종대를 손보는 노파처럼 / 곧 헝클어지고 말 텃밭일망정 / 흙무더기를 뿌리 쪽으로 끌어다 다독거리는 일

장맛비 잠시 그친 뒤, 비가 오면 다시 어질러질 텐데 / 젖은 바닥에 붙어 잘 쓸리지도 않는 은행잎을 쓸어담느라 비질을 하는 일

치우고 나면 쌓이고, 치우고 나면 쌓이는 눈에 굽은 허리가 안쓰러워 / 어르신, 청소부에게 그냥 맡기세요 했더니 / 멀거니 쳐다보곤 하던 일을 마저 하던 그 고요한 눈빛처럼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94 ~ 95쪽)의 2·3·4연이다. 함민복 시인은 표사에서 말했다. “손택수 시인의 시는 일단 명징해서 좋다. (······) 그를 만나면 세계는 벽을 벗고 경계 이전의 알몸을 허락한다. 서로 영통하는 길을 내어놓는다.”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은 3부에 나뉘어 62편이 실렸다. 발문은 반갑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시인 박준의 「울지 않으려 부르는 노래」다. 발문에서 시인의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전문을 처음 대했다. 나는 시인이 그동안 펴낸 세 권의 시집에서 첫 시집인 『호랑이 발자국』을 손에 넣었다. 당연(?)히 등단작으로 표제를 삼는 것이 관례가 아니었던가. 한 술 더 떠 본문에서 시인의 첫 활자화된 시를 찾을 수 없었다. 이번 시집도 아연함은 마찬가지였다. 표제작은 본문에 없었다. ‘세상의 먼지들이 모여 빛을 내는 우물마루’ 는「불국사 대웅전 마루에서」(93쪽)의 한 행이었다.

 

‘잘 살고 간다. 화장 뿌려, 안녕.’

 

「마지막 목욕」(54 ~ 55쪽)의 한 행이다. 시인의 부친은 달력 뒷장에 정갈한 필체로 한 마디 유언만 남겼다. 이 시의 부제는 ‘죽음의 형식 1’으로 죽음에 대한 연작시 5편중의 한 편이다. 2012년 열흘 간격으로 시인의 외할머니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시인은 2014년 3월 실천문학사 대표직을 내놓았다. 10년을 출퇴근한 출판사였다. 출판인에서 시인으로 돌아왔다. 강원 원주 토지문학관에 들어갔다. 네 번째 시집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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