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한 접시의 시

대빈창 2015. 12. 16. 06:18

 

 

책이름 : 한 접시의 시

지은이 : 나희덕

펴낸곳 : 창비

 

조간(朝刊)은 부음(訃音)과 같다 / 사람이 자꾸 죽는다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서 / 죽였을 것이다. / 사람입니다, 밝히지 못하고 / 죽었을 것이다

죽이고 싶었다고······ 죽였을 것이다 / 죽이고 싶었는데······ 죽였을 것이다 / 죽이고 싶었지만······ 죽였을 것이다

죽은 사람은, / 죽을 것처럼 애도(哀悼)해야 할 텐데

죽은 자는 여전히 / 얼굴을 벗지 않고 / 심장(心臟)을 꺼내 놓지 않는다

여전히 납치(拉致) 중이고 / 여전히 폭행(暴行) 중이고 / 여전히 진압(鎭壓) 중이다

계획적(計劃的)으로 / 즉흥적(卽興的)으로 / 합법적(合法的)으로 / 사람이 죽어 간다

전투적(戰鬪的)으로 / 착란적(錯亂的)으로 / 궁극적(窮極的)으로, 사람이 죽어 간다

아, 결사적(決死的)으로 / 총체적(總體的)으로 / 전격적(電擊的)으로 / 죽은 것들이, 죽지 않는다

죽은 자는 여전히 실종(失踪) 중이고 / 농성(籠城) 중이고 /투신(投身) 중이다

유령(幽靈)이 떠다니는 현관(玄關)들, / 조간(朝刊)은 부음(訃音) 같다

 

시인 이영광의 「유령 3」 전문이다. 책에 실린 시편들을 읽어 나가다 나는 여기서 숨을 컥! 들이켰다. 치가 떨리도록 분노가 목울대를 치받았다. 「유령」 연작은 2009년 1월 20일 이 땅의 가난한 자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아붙이며 과잉 폭력진압으로 다섯 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 관련 시들이다. 무엇인가 쫓기는 사람처럼 나는 급히 이영광의 시집 『아픈 천국』을 손에 넣었다.

 

안도현 / 장석남 / 황지우 / 이원 / 장정일 / 고형렬 / 이장욱 / 허수경 / 황인숙 / 김선우 / 이영광 / 김기택 / 김혜순 / 문태준 / 이성복 / 기형도 / 이문재 / 박형준 / 최두석 / 송찬호 / 심보선

 

책은 시적 언어와 상상력, 화자와 퍼소나, 구조와 리듬, 묘사와 이미지, 은유와 상징, 서정과 서사라는 여섯 개의 키워드로 시 강의를 흥미롭게 펼쳐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들로 소개된 시 21편의 시인들이다.

책장에서 어깨를 겯은 시집 180여권 중 여성의 시집은 고작 3권이었다. 나의 편식은 언제부터 중증이었는가. 너무 쏠림이 심하지 않은가. 그때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이 눈에 자꾸 밟혔다. 가트에 넣기 전 온라인 서적 검색창에 시인의 이름을 입력했다.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시인은 문예창작과 교수였다. 나는 시인의 시집 대신 시 강의노트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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