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지금 여기가 맨 앞

대빈창 2015. 12. 11. 07:00

 

 

책이름 : 지금 여기가 맨 앞

지은이 : 이문재

펴낸곳 : 문학동네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문학동네, 2011년)

산책시편(민음사, 2007년)

마음의 오지(문학동네, 2007년)

제국호텔(문학동네, 2012년)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2014년)

 

내 책장에서 어깨를 겯고 있는 시인의 시집이다.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으로 2004년에 나온 『제국호텔』이후 10년 만에 독자를 찾았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를 쓰면서 사십대에서 오십대로 넘어섰다. 1982년 〈시운동〉4집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니, 시인의 시업은 34년째다. 고작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했으니, 다작의 시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모두 85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지금 여기가 맨 앞인 이유 - 고층 빌딩 속의 어부왕들을 위하여로 40쪽이 넘는 긴 글이다. 평자는 각 부의 키워드를 봄 / 중년성 / 사랑-죽음 / 시공간의 사회학으로 파악했다. 

 

어둠이 물의 정수리에서 떠나는 소리 / 달빛이 뒤돌아서는 소리, 이슬이 연꽃 속으로 스며드는 소리, 이슬이 연잎에서 둥글게 말리는 소리, 연잎이 이슬방울을 버리는 소리, 연근이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 잉어가 부레를 크게 하는 소리, 진흙이 뿌리를 받아들이는 소리, 조금 더워진 물이 수면 쪽으로 올라가는 소리, 뱀장어 꼬리가 연의 뿌리들을 건드리는 소리, 연꽃이 제 머리를 동쪽으로 내미는 소리, 소금쟁이가 물위를 걷는 소리, 물잠자리가 제 날개가 있는지 알아보려 한번 날개를 접어보는 소리―

 

「물의 결가부좌」(48 ~ 50쪽)의 5연이다. 정기구독하는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통해 시인을 만났다. 어라! 시인의 출생지가 김포였네. 이 땅을 대표하는 생태시인이 동향이라는 사실에 나는 미더웠다. 서해의 작은 섬에서 얼치기 생태주의자를 자처하는 내게 시인의 시들은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시인은 산업문명의 풍요 속에 제 발등을 찍으며 희희낙락거리는 호모 사피엔스에 절망하고 있었다. 시인은 분노했다. “지구 전체로 보면 인류가 암 덩어리입니다. 지구 생태계에서 보면 인류라는 종이 지속되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암 덩어리일 뿐인데. 산업문명이라는 게 최악의 암 종양입니다. 지구라는 ‘살’을 파먹으면서 이런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게 ‘제 살’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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