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탐욕의 울타리

대빈창 2015. 12. 21. 04:54

 

 

책이름 : 탐욕의 울타리

지은이 : 박병상

펴낸곳 : 이상북스

 

젖소 숫송아지를 최고급 쇠고기를 위한 ‘비일(veal)'로 사육했다. 햇빛을 철저히 차단한 좁은 나무우리에 한 마리씩 격리하고 철분을 제거한 연유를 태어나면서 4개월 동안 먹이면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분홍색 살코기가 불어났다. 철분을 흡수하면 살코기가 붉어졌다. 어린 송아지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냉혹하게 도살되었다. 옥수수 사료만 먹은 소는 간이 망가져 보통 5개월을 넘기지 못하지만 강력한 항생물질로 버텼다. 아래 턱 앞니의 젖니가 영구치로 바뀌는 생후 20개월 전후에 소는 죽었다. 돼지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비용 절감으로 마취도 없이 위아래턱 송곳니 여덟 개가 절단되고 꼬리도 잘렸다. 생후 일주일 만에 마취 없이 인부의 억센 손에 작은 고환이 떼어지는 거세가 비일비재했다.

부화 후 5일이 지난 병아리의 부리를 벌겋게 달아오른 칼로 잘라냈다. 1분에 15마리 속도로 부리 앞부분의 1/4를 잘라내는 과정에서 코가 베어져 죽는 병아리도 있다. 미국에서만 하루 50만 마리의 수평아리가 컨베이어에 실려 폐기되거나 사료로 가공되어 닭 모이에 들어갔다. 산업축산의 대표적 동물인 소, 돼지, 닭의 지옥 풍경이었다. 반려동물로 개와 고양이, 실험동물로 쥐와 침팬지가 등장하는 또다른 지옥도는 읽는이가 정상인이라면 아주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박병상은 인천 도시생태·환경 연구소장으로 환경운동을 하는 생물학자다. 나는 15여 년 전 녹색출판사에서 나온 생태계의 질서를 허무는 생명공학을 반대하는 『파우스트의 선택』을 잡았다. 현재 세계 인구는 72억을 넘어섰다. 이를 ‘홀로세(Holocene)의 공룡’이라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삶의 터전을 오염시킨 지 500년이 되었고, 유일한 생명이 살 수 있는 별 지구를 재생 불가능하게 만든 지 50년이 되었다. 홀로세의 공룡은 스스로 멸종을 자초했다. 이 책의 부제는 ‘인간 세계에 들어온 동물들의 삶, 우리가 이룬 디스토피아’다.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를 일으킨 인간의 탐욕과 몰염치가 불러온 울타리 동물들의 참상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였다.

90년대 말 카리브 해 푸에르토리코의 여자애가 생후 7개월이 지나면서 가슴이 부풀고, 20개월이 지나자 음모가 돋고, 만 세 살이 되자 월경을 했다. 원인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온 값싼 닭고기였다.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을 많이 섞은 사료를 먹은 산란용 닭이었다. 광우병을 연구한 콤 켈러허(Colm A. Kellerher) 박사는 소 도축 부산물을 소에게 주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치매가 무려 9800% 늘어났다고 폭로했다. 이것은 인간광우병(vCJD)이 치매로 은폐되었다는 것을 반증했다. 지나친 개발로 더럽혀진 세상에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호주 사막의 원주민은 결정했다. 46억 살 된 지구. 가장 늦게 세상의 빛을 본 호모 사피엔스가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황폐화시킨 모습이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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