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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의 죽음 - 2

누이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누이는 생명의 불씨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상태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어머니의 울부짖음에 누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누이의 상태를 조용히 말했습니다. “일이 멀지 않았다고.” 누이의 폐 사진은 공허했습니다. 누이의 생에 대한 집착이 가련했습니다. 어머니는 고명딸을 가슴에 묻고 계셨습니다. 집으로 향하며 나는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화장해서 섬에 모셔요. 수목장으로. 누이가 좋아하던 곳에” “아니다. 거기는 너무 춥다. 동생은 추위 잘 타잖아. 따뜻한 곳에 묻어라.” 어머니의 말씀에 물기가 가득했습니다. 북향인 우리집 뒤울안은 응달 입니다. 어머니는 누이의 추위를 걱정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

세든 집이 하필이면?

나는 숭어 이마에 붙어사는 따개비야 / 나는 친구들처럼 바위나 말뚝에 붙어살지 않아 / 나는 움직이지 않아도 움직일 수 있어 / 숭어가 내 자가용이야 / 나는 세상을 떠도는 여행자야 / 그물을 피해 숭어가 내달릴 때 / 내 이마에서 물줄기 하나가 달려 나가지 / 멋있지? / 물고기들도 그림자를 볼 수 있다고 / 숭어가 물 위로 뛰어오를 때 / 쏴 하고 비명도 지르지만 / 나는 물 위 세상도 실컷 구경하는 따개비야 함민복의 시 「따개비」(46쪽)의 전문입니다. 대빈창 해변에서 돌아와 책장의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를 꺼냈습니다. 동시집의 구성은 시인의 동시와 화가 염혜원의 그림이 서로 마주보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이마에 붙은 따개비가 귀찮은지 숭어가 눈을 흘겼습니다. 제방 아래까지 밀려 온 부표에 다..

언 손

책이름 : 언 손 지은이 : 이세기 펴낸곳 : 창비 “한겨울 밤중 적막을 깨는 장독 터지는 소리를 정말 실감나게 묘사 했더라. 시인은 분명 그 소리를 들었을 거야.” 오래전에 시인 함민복은 찰랑거리는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감탄조로 되뇌었다. 나는 이번 시집을 펼치며 분명 이 구절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없었다. 품절되어 어렵게 중고샵을 통해 손에 넣은 시인의 첫 시집 「먹염바다」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시인의 시다. 5년 만에 펴낸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1·2부에 나뉘어 53시편과 해설로 문학평론가 박수연의 ‘고요한 비애, 반복의 심미화’가 실렸다. 첫 시집과 마찬가지로 황해를 시적 모태로 둔 시인은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여전히 시선을 두고 있었다..

저 스티로폼 박스가 궁금하다.

기온이 내려가며 갯벌에 죽쎄기가 보입니다. 죽쎄기는 갯벌에 앉은 얼음장을 말하는 섬 방언입니다. 물이 들면서 백사장을 어루만지는 물살에 살얼음이 돋고, 물이 빠지면 갯벌에 하얀 성에가 내려앉습니다. 날이 차지면 죽쎄기가 덩치를 키웁니다. 대빈창 해변 물놀이 터의 안전선이 찬바람과 얼음 같은 바닷물에 출렁거립니다. 시간이 갈수록 물드는 높이가 낮아집니다. 년중 유두사리와 백중사리에 물이 많이 밀었다가 차츰 줄어듭니다. 두달 전 해변 제방 언저리에 밀려 온 스티로폼 박스입니다. 사각형 박스 뚜껑에 네모 난 구멍을 뚫었습니다. 동여 맨 노끈은 어깨에 걸쳤을 나뭇가지에 매였습니다. 도대체 저 스티로폼 박스의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올 겨울은 굴 흉년입니다. 기온 탓인지 굴이 제대로 여물지 못했습니다. 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