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내려가며 갯벌에 죽쎄기가 보입니다. 죽쎄기는 갯벌에 앉은 얼음장을 말하는 섬 방언입니다. 물이 들면서 백사장을 어루만지는 물살에 살얼음이 돋고, 물이 빠지면 갯벌에 하얀 성에가 내려앉습니다. 날이 차지면 죽쎄기가 덩치를 키웁니다. 대빈창 해변 물놀이 터의 안전선이 찬바람과 얼음 같은 바닷물에 출렁거립니다. 시간이 갈수록 물드는 높이가 낮아집니다. 년중 유두사리와 백중사리에 물이 많이 밀었다가 차츰 줄어듭니다. 두달 전 해변 제방 언저리에 밀려 온 스티로폼 박스입니다. 사각형 박스 뚜껑에 네모 난 구멍을 뚫었습니다. 동여 맨 노끈은 어깨에 걸쳤을 나뭇가지에 매였습니다. 도대체 저 스티로폼 박스의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올 겨울은 굴 흉년입니다. 기온 탓인지 굴이 제대로 여물지 못했습니다. 굴 값이 올라 한 관에 6만원입니다. 구렁텅에 굴을 쪼러 나가시는 할머니들의 굴통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구렁텅도 섬 방언입니다. 굴 웅덩이를 말합니다. 구렁텅은 대빈창 해변의 바위절벽 아래입니다. 푹 꺼진 지형에 널린 크고 작은 바위들은 물이 밀면 잠기고, 썰면 드러나는 천혜의 굴 서식지입니다. 하지만 스티로폼 박스가 덩치가 커 거추장스럽게 보입니다. 할머니들은 물이 썰기 시작하면 한 손에 죄(굴을 쪼는 도구)를, 다른 한 손에는 가벼운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삼삼오오 구라탕으로 향합니다.
물이 가장 많이 써는 날을 외지인도 기가 차게 알고 있습니다. 섬이 고향인 출향한 사람들이거나, 물때 달력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해수면이 마이너스인 간조가 돌아오면 극성스런 사람들이 섬을 찾아 바닷가는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바우재(섬의 방언, 민꽃게를 이름), 소라, 피조개, 고둥을 맨손으로 잡는 재미를 만끽하는 사람들입니다. 미처 챙기지 못한 어떤 이가 손재주를 발휘한 들통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깨에 걸친 나뭇가지가 약해 보입니다.
망둥이 낚시의 적기는 추석 무렵입니다. 섬에서 흔히 머리 나쁜 사람을 망둥이에 비유합니다. 낚시 바늘에 입이 찢어져 물에 떨어진 놈이 바로 미끼를 다시 뭅니다. 섬을 찾는 사람들은 강화도 외포리 포구에서 미끼로 갯지렁이를 구입합니다. 섬 주민은 물엄소(민챙이)를 망둥이 미끼로 씁니다. 물엄소는 물이 빠진 갯벌에 말그대로 뻘반 물엄소반이라 할만치 흔합니다. 물살에 떠밀린 물알이 여름이면 백사장을 하얗게 뒤덮습니다. 투명한 정구공같은 물알이 물엄소의 알 꾸러미입니다. 어부들에게 골칫덩어리입니다. 그물을 들면 고기는 없고 물알만 가득 들어 그물이 뜯어집니다. 주민들은 허리 높이의 물속에서 망둥이 낚시를 합니다. 당연히 스티로폼 박스는 거추장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폐그물로 엮은 망과 페트병을 오린 물엄소통 그리고 대나무 낚시가 전부입니다.
저 스티로폼 박스는 물흐름으로 보아 말도에서 떠밀려 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말도는 어족자원이 풍부합니다. 어로작업이 금지된 NLL 입니다. 농어는 육식성 어류로 물살이 센 여 부근에 서식합니다. 바위낚시는 릴을 쓰고, 어선낚시는 얼레를 이용합니다. 서도 군도(群島)에서 손가락으로 꼽는 회가 농어입니다. 고소하고 찰진 회 맛이 일품입니다. 바로 농어낚시의 미끼가 미꾸라지입니다. 저 통은 분명 중국산 미꾸라지가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강화도 오일장에서 공수된 미꾸라지가 저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말도 주민의 손에 건네졌습니다. 낚시꾼은 정신이 팔려 미끼통이 출렁출렁 물살에 떠밀려가는지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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