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밀면 결이 하얗게 부서지며 발등을 적시는 바닷가 벼랑 노목의 늙은 줄기와 가지를 휘감은 덩굴. 음나무와 머루 입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 청산에 살어리랏다 / 멀위랑 다래랑 먹고 / 청산에 살어리랏다”의 머루 입니다. 머루는 이 땅의 토종포도로, 보통 ‘산포도’라 부릅니다. 이미지에서 보듯 머루의 줄기는 10m 이상 뻗습니다. 음나무는 열매로 음(부적용 노리개)를 만든다고 해서 붙은 이름 입니다. 어린 가지에 무시무시한 크기의 가시가 달려 지방에 따라 엄嚴나무라 불리기도 합니다. 어릴 적 시골집 문지방에 삼두매 부적과 가시가 사나운 엄나무 줄기를 올려 잡귀를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엄나무의 묵은 줄기는 가시가 없습니다. 야생 음나무는 가시가 적고,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재배목은 가시가 많습니다. 나무가 가시를 다는 것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 입니다. 이미지의 음나무는 가시가 별로 없습니다. 가시를 스스로 없앤 것은 적의 침입에 자신을 가졌다는 뜻 입니다. 아니면 벼랑에 터를 잡아 외부의 손길이 도저히 미칠 수 없어 안심하고 자기보호 장치를 푼 것인지도 모릅니다. 음나무는 두릅나뭇과로 새순은 쌉쌀하면서도 향긋해 데쳐 먹습니다. 벼랑위 음나무의 새순은 사람 손을 타질않아 온전한 줄기로 자랐습니다. 머루 열매는 온통 산비둘기와 직박구리 차지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인 驚蟄경칩 입니다.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튀어 나오는 바야흐로 농촌의 봄이 시작되는 때 입니다. 보리, 밀, 시금치 등 월동작물들도 기지개를 켜고 생육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흙일을 해도 탈이 없다고 하여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고, 보리 싹을 보고 한 해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습니다. 굳센 바위틈에 힘겹게 뿌리를 내린 음나무가 고목이 되었습니다. 머루의 노목에 기댄 삶이 고달프게 보입니다. 하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물 한 방울 얻기 힘든 척박한 환경에서 새순을 준비하느라 실뿌리는 물을 찾아 한 걸음을 내디딜 것입니다. 젊은 시절 나의 삶은 가시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워 남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지천명을 넘기고 이제야 철이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음나무처럼 가시를 몸 안으로 갈무리 할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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