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다. 조류독감(AI)이라는 유령이.
1차 발생 ; 2003년 겨울철 - 102일간 ; 19건 - 528만마리
2차 발생 ; 2006년 겨울철 - 104일간 ; 7건 - 280만마리
3차 발생 ; 2008년 봄철 - 42일간 ; 33건 - 1020만마리
4차 발생 ; 2010년 겨울철 - 139일간 ; 53건 - 640만마리
5차 발생 ; 2014년 겨울철 - 현재 진행중 ; 13건 - 282만마리
이 땅에 AI가 처음 발생한 2003년도부터 살처분된 총가금류는 2430만 마리에 달했다. 현재 진행중인 5차 발생에서 또 얼마나 많은 생명이 땅에 묻힐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말이 좋아 살처분이지 잔인하기 그지없는 생매장이었다. 생명을 경시하고 지하수·토양 오염만 가중시키는 무차별 살처분 방식은 이대로 좋은가. 2003년부터 AI에 감염이 확인된 가금류는 고작 121마리였다. 문제는 AI에 감염된 농장으로부터 3㎞ 안의 가금류는 감염 여부에 상관없이 모조리 살처분하는데 있다. 정부는 이번 AI의 주범으로 철새 도래지의 가창오리를 지목했다. 2003년부터 이 땅에 AI를 퍼뜨린 범인은 철새였다. 하지만 정부는 맥을 잘못 짚었다. AI 확산의 근본 원인은 대규모 집약적 축산 방식인 ‘공장식 축산’에 있다. 한국의 닭·오리 성체 한 마리가 차지하는 공간은 가로·세로 평균 15㎝다. 반면 유럽연합은 가금류 마리당 0.75㎡의 공간을 확보한다. 이들 국가에서 조류독감이 퍼지지 않는 이유는 가금류의 면역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좁은 공간에서 항생제를 강제로 먹이는 열악한 환경이 원인이었다. 철새가 유럽에는 얼씬도 않고 한반도에만 날아왔다는 어불성설이다.
위 이미지는 옆집 형네 닭장이다. 대빈창 고개길 산자락의 닭장에 30여 마리의 닭이 방사되었다. 폐그물로 울타리와 지붕을 가린 이유는 맹금류인 솔개로부터 닭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닭은 고기와 달걀을 함께 얻는 겸용종이다. 달걀은 당연히 유정란이다. 명절이 돌아오거나 집에 귀한 손님이 들면 옆집 형은 닭을 잡았다. 닭장이 훤해지면 이웃집은 부화기로 병아리를 깠다. 외딴섬을 찾은 대처 사람들이 가끔 유정란을 찾을 뿐 옆집은 이웃사촌들께 남아도는 계란을 꾸러미로 돌렸다. 항생제 구경은커녕 땅바닥을 헤집으며 자란 섬닭은 당연히 감기를 몰랐다. 오늘 새벽. 나의 단잠을 장닭의 홰치는 소리가 잠시 방해했을 뿐이다. 전통 농업방식의 단순소박한 삶이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것이다. 조만간 값싼 석유문명이 조종을 울리면 호모 사피엔스는 '오래된 미래'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가장 진보적인 삶이란 공동체적 농촌사회를 준비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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