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전야. 시나브로 어둠이 장막을 내렸습니다. 서해 외딴 섬의 작은 교회는 산허리에서 느리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산의 경사를 밀어 앉은 교회는 높은 축대위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파르테논 신전처럼. 성탄 전야의 저녁을 함께 하자고 장로님이 말을 건넸습니다. 연례행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돼지를 잡아 순대국을 끓였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한 끼를 나눕니다. 옆집 형수가 어머니를 위해 주발에 김이 설설 나는 순대국을 가득 담아왔습니다. 어머니와 단출한 성탄 전야 저녁을 했습니다. 여느 해와 다름없이 소박한 트리가 교회 마당을 장식했습니다. 제가 섬에 정착한 이후로 변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깜박이 전구가 2층 종루에서 사택, 식당 건물로 길게 늘여졌습니다. 새벽 여명이 터오면 소등하고, 어둠이 내리면 깜박 깜박 불이 들어옵니다. 설날이 지나서야 가난한 시골 교회의 트리는 내년을 기약할 것입니다.
종루는 자기 역할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교회 입구의 종탑에서 새벽기도를 알리는 종이 울립니다. 어둠이 늦께 물러나는 겨울은 새벽 4시 30분에, 그리고 봄·여름·가을에는 4시에 정확히 15번 종소리가 납니다. 저는 어김없이 곤한 새벽잠을 깰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입구의 고갯길을 마주보는 앞집의 검둥이가 처량하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종이 울기 시작하면 곡하듯 서럽게 울다가도 종소리가 멈추면 뚝 울음을 그칩니다. "별 희한한 놈도 다 있네." 처음에는 신경이 송곳처럼 날카롭게 곤두섰습니다. 어둠 속에서 놈한테 풀 수 없는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이제 만성이 되었는지 이불자락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씁니다. 녀석이 어떤 사연을 숨기고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성가대의 노랫소리를 올해는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매년 어김없이 성가대의 노랫소리가 현관문 앞에 울려 퍼지면 저는 낮에 마련한 과자선물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작년에 맥이 끊어졌습니다. 느리 마을의 학생은 유일합니다. 할머니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성탄 전날이면 집집마다 농협 구판장에서 과자 선물을 마련합니다. 찬바람 속에서 손발을 비비며 축복의 노래를 불러주는 성가대에게 과자를 선물합니다. 성탄절이 지난 어느 날, 온 마을 과자가 한데 골고루 섞여 집집마다 되돌아왔습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그친 섬 마을의 공동체가 서서히 흙담 무너지듯 합니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닭은 감기를 모른다. (0) | 2014.02.10 |
---|---|
저 스티로폼 박스가 궁금하다. (0) | 2014.01.06 |
가을의 끝, 비우다 (0) | 2013.11.04 |
나의 쉼플레가데스 (0) | 2013.11.01 |
아버지, 자연으로 돌아가시다 (0) | 2013.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