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나의 쉼플레가데스

대빈창 2013. 11. 1. 08:06

 

 

 

소설가·번역가·신화학자 이윤기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8년이 되었습니다. 선생이 독자들에게 마지막 선물한 신화 이야기는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입니다. 금양모피(金羊毛皮) - 황금 빛 양의 털가죽을 찾아 떠난 이아손 일행의 모험을 그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가 유작이었습니다. 원정대가 금양모피가 있는 콜키스에 닿기 위해서는 ‘적대의 바다’ 흑해를 건너야 합니다. 가장 큰 난관인 ‘쉼플레가데스’를 뚫고 지나가야만 합니다. 여기서 쉼플레가데스는 ‘충돌하는 두 개의 바위섬’을 말합니다. 한 인생의 항해에서 누구나 파랑을 만나고, 암초에 부딪히는 위기를 몇 번 마주쳐야 합니다. 나의 흑해와 쉼플레가데스는 무엇이었을까.

10년 전 홀어머니를 모시고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에 삶터를 꾸렸습니다. 고향 김포는 ‘한강 신도시’라는 개발 광풍에 휘말려 콘크리트 숲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편하다는 신도시의 아파트 생활을 버리고, 외딴 섬의 텃밭 딸린 오래된 시골집을 새 거처로 삼았습니다. 나의 인생에서 쉼플레가데스는 탐진치(貪瞋痴)였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독심(三毒心)으로 탐은 탐욕을, 진은 분노를, 치는 어리석음을 가리킵니다. 시인 이문재는 현대 자본주의 도시는 탐진치의 결정체라고 말했습니다. 물질적 탐욕과 적자생존, 약육강식 논리가 부글부글 끓는 분노의 공간 그리고 대중 미디어에 휘둘리는 어리석음입니다.

섬 생활은 단순소박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 이미지는 제가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는 길 위에서 만나는 풍경입니다. 대빈창 해변의 제방이 끝나는 곳에서 보이는 바다와 섬 입니다. 배 한척이 두 개의 섬이 마주보고 있는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면 ‘쉼플레가데스’ 같기도 합니다. 동만도(東晩島)와 서만도(西晩島)입니다. 옹진의 장봉도에 딸린 무인도입니다. 두 섬은 원래 하나의 섬이었는데 조수의 침식으로 인해 나뉘어졌다고 합니다. 무인도는 가마우지,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 등 천연기념물 ‘새들의 낙원’ 입니다. 평화롭고 한적한 새들의 섬에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바람은 한가지입니다. 한적하고 조용한 섬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다 남은 삶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섬에 뼈를 묻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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