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가을의 끝, 비우다

대빈창 2013. 11. 4. 05:29

 

 

 

절기는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을 지나, 겨울의 길목이라는 입동을 향하고 있습니다. 해가 많이 짧아졌습니다. 저의 산책시간은 아침저녁 6시입니다. 아침은 푸른 대기가 점차 엷어지면서 먼동이 터오고, 저녁은 시나브로 땅거미가 대기에 삼투압처럼 스며듭니다. 다랑구지 논들은 바리깡이 머리칼을 밀 듯 콤바인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밤중까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일을 합니다. 날이 차가워졌습니다. 이제 들녘은 텅 비었습니다. 모내고 두 달여동안 비만 퍼부어 농민들의 가슴을 까맣게 태우더니, 다행히 비 한 방울 줄금거리지 않은 가을볕이 꾸준해 평년작을 이루었습니다. 계절을 잊지 않은 기러기 떼가 논바닥을 덮었습니다. 녀석들은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추수가 시작될 무렵 찾아 온 진객이지만 볏대에 달린 이삭에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콤바인이 흘린 알곡만 주워 먹기에 농부들은 녀석들을 소 닭 보듯 합니다. 인기척에 놀랐는지 녀석들은 하늘이 새까맣게 날아 올랐습니다.

서리가 늦은 섬은 아직 고춧대는 청청합니다. 끝물까지 따, 철모르는 풋고추만 매달렸습니다. 아낙네들은 풀을 쑤어 고추버무리를 만들겠지요. 고구마 캐기도 일을 마쳤습니다. 요즘 순자르기는 기계로 합니다. 비닐을 걷고, 고구마 두둑에 경운기가 올라탔습니다. 땅속 고구마가 햇볕에 몸을 드러내면 할머니들이 고구마에 붙은 진흙을 털어냅니다. 이삼일 밭에 내버려둡니다. 고구마의 상처를 아물리고, 껍질에 막을 입히는 큐어링이라 합니다. 포장박스에 담아 바로 뭍으로 출하합니다. 고구마는 저장성이 약해 집안에 보관하기 힘듭니다.

바다 물빛도 어두워졌습니다. 계절에 따라 밤과 낮의 물높이도 다릅니다. 여름은 밤물이 많이 썰고, 겨울은 낮물이 많이 썹니다. 이제 물이 썰어 바다가 바닥을 드러내도 소라와 바우재를 볼 수 없습니다. 녀석들은 날이 차지자 깊은 물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상합도 차츰 뻘 속으로 파고듭니다. 밤바다에 젓새우잡이 배들의 불빛만 환합니다. 망둥어는 말 그대로 동태만합니다. 덩치는 큰데 낚시에 딸려오는 녀석들은 힘이 없습니다. 찬물에 얼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놈들의 일생도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봉구산자락의 산밭 둔덕에 호박 덩어리들만 널렸습니다. 여름내 고라니 방지용 폐그물을 무성하게 덮었던 잎을 모두 떨구었습니다. 나무들도 단풍 든 잎을 떨구고 몸을 가볍게 만드는 계절입니다. 바다를 건너 온 시베리아발 찬바람의 거센 물결에 작은 섬이 떠내려 갈 것처럼 출렁입니다. 노인네들이 대처 자식을 찾아 떠났습니다. 남은 할머니 몇 분이 마을회관에 모여들었습니다. 겨우내 동고동락 하시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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