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8

까마귀 이제 바다를 넘보다. - 3

까마귀는 참새목 까마귀과 까마귀속의 새다.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서식하는 흔한 텃새이다. 까마귀의 학명 Corvus corone는 썩은 고기를 먹는 것과 관계가 있다. 까마귀의 몸은 암수 모두 자줏빛 광택이 나는 검정 색이다. 까마귀는 농촌의 인가 부근, 해변, 산 등 높은 나무 위에 나뭇가지로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짓는다. 알을 낳은 시기는 3월 하순에서 6월 하순까지이다. 알을 품는 기간은 19-20일이고, 새끼는 알을 깬지 30-35일이면 둥지를 떠난다. 둥지를 떠난 어린 새는 오랫동안 어미 새와 함께 지냈다. 까마귀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새였다. 반포지효反哺之孝, 즉 효도하는 새로 까마귀의 새끼가 자라서 어미 새에게 공양한다고 알려졌다. 이는 둥지를 떠날 때 몸집이 꽤 큰 어린 까마귀가 어미에게..

별식別食 하는 날

휴일 햇살이 자글자글 했습니다. 혼탁한 대기의 황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오늘따라 송홧가루도 주춤하는 모양새입니다. 아차도, 볼음도, 석모도, 서검도, 미법도, 교동도. 서해의 섬들이 파란 바탕의 도화지에 돌연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읽던 책을 덮고, 운동화 끈을 매었습니다. 일찌감치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올 봄은 비가 잦아 천수답 다랑구지마다 물이 흥건했습니다. 관정에서 지하수를 퍼 올렸던 모터소리도 숨을 죽였습니다. 가을갈이를 한 무논을 트랙터가 써레질하고 있었습니다. 트랙터 뒤를 쫓아다니는 십 여 마리의 중대백로와 황로의 날개 짓이 분주합니다. 녀석들은 모두 황새목 백로과에 속하는 여름 철새입니다. 중대백로는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번져 흔하게 눈에 뜨이는 제법 덩치가 있는 녀석입니다. 암컷과 ..

까마귀 이제 바다를 넘보다. - 2

주말 대빈창 해변 오후 산책에 나섰습니다. 물 빠진 갯벌에서 무엇인가 두리번거리는 까마귀들을 보았습니다. 벌써 6년 반이 흘렀습니다. ‘까치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바다를 향해 날아갔습니다. 배의 흰 무늬가 점차 검은 색으로 바뀌면서 까마귀로 변합니다. 들물의 바다 속으로 잠수하는 까마귀가 차츰 가마우지로 변합니다. 커다란 물고기를 부리에 문 가마우지가 가쁜 숨을 내쉬며 그물말장에 내려앉았습니다. 등털이 회색으로 뒤덮으면서 갈매기로 변하고 있었습니다.’「까마귀 이제 해변을 넘보다」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나의 상상 속의 조류진화도(?) 입니다. 해송 솔숲을 가로질러 해변 제방에 올라섰습니다. 보안등 전봇대에 연결된 전선에 까마귀 서너 마리가 특유의 음산스런 울음으로 나를 맞아 주었습니다. 여전히 대빈창 해변의..

까마귀와 고양이

열흘 전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봉구산자락 옛길 오르막에 오르자 부푼 바다가 보였습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의 대기는 희부염했습니다. 바다건너 석모도가 흐릿했습니다. 뒷집은 봉구산 등산로 초입 밭을 내놓았습니다. 대처 사는 외아들의 아파트 입주로 목돈이 필요했습니다. 서울 사람이 땅을 샀습니다. 뒷집 부부는 농사를 계속 지었습니다. 비닐피복을 씌운 두둑에 옥수수가 심겼습니다. 맨 땅은 참깨 모를 낼 예정입니다. 그때 밭 가운데 서로 노려보는 짐승이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분명 검돌이였습니다. 구박덩어리 검돌이도 새끼를 뱄습니다. 노순이와 새끼들을 끔찍이 아끼는 뒷집 형수지만 검돌이는 눈 밖에 났습니다. 형수가 거름으로 던진 수박껍질에 녀석은 불쌍하게 코를 박고 있었습니다. 까마귀도 허기가 졌는..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1936~ )가 1970년에 발표한 우화소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갈매기 조너선은 본질적 삶에 대해 끊임없이 사색합니다. 일생동안 비행에 대한 꿈과 신념을 실현하고자 끝없이 노력합니다. 삶의 진리와 자기완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작품으로 누구나 귀에 익은 말입니다. 대기 중 습도가 높아 무더위가 여적 가시지 않았습니다. 절기는 입추를 지나 처서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낮의 기온은 30℃ 넘어서지만 아침저녁으로 바람에 선선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먼동이 터오며 밤새 진군한 안개가 서서히 벗겨지고 있었습니다. 나의 산책은 일년 열두달 같은 길을 오고 갑니다. 대빈창 해변 솔숲..

텃밭은 참새의 먹이창고

위 이미지를 자세히 보면 전봇대와 모과나무 사이의 보리 이삭에 참새 한 마리가 매달렸고, 한 마리는 바닥에 떨어진 보리 낱알을 쪼고 있습니다. 지난 주 휴일 현관 로비 의자에 앉아 텃밭을 내다보시던 어머니가 조용히 저를 불렀습니다. 현관문을 슬며시 밀치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에 손가락을 댔습니다. 보리 한 포기에 참새떼가 달려들어 이삭을 모두 떨구고 줄기만 남겨 놓았습니다. 녀석들은 채 여물지 않은 보리 이삭의 즙을 빨아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남은 보리 이삭에 양파 그물을 씌우며 말씀하셨습니다. “올해는 새들도 극성이구나.” 나는 참새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는 우리집 텃밭은 참새의 먹이창고입니다. 무성한 모과나무 그늘아래 쉬던 녀석들은 수시로 텃밭에 내려앉아 벌레를 사냥합니다. 우리..

까마귀 이제 바다를 넘보다.

“이만하게 자랐겠는 걸.” 어머니가 큰 호박을 움켜잡는 손짓을 하셨습니다. 저녁산책이었습니다. 무려 5개월 만에 녀석을 다시 만났습니다. 4월 중순 대빈창 제방길이 바위벼랑에 막힌 외진 곳. 어머니는 녀석이 발붐발붐 집을 나왔다가 길을 잃어 돌아가지 못했다고 쯧쯧 혀를 차셨습니다. 대빈창 제방길을 가파른 산비탈이 바투 따라가다 바위벼랑이 한굽이 바다를 막아섭니다. 제방과 이어지는 산자락은 온통 아카시나무가 뒤덮었습니다. 아카시와 참나무, 칡과 머루, 키 작은 관목과 사람 키를 웃자란 들풀로 신록이 울창한 산속으로 녀석이 몸을 숨겼습니다. 안경을 쓴 것처럼 눈가에만 둥그렇게 검은 무늬가 박힌 흰 토끼는 덩치가 그대로였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녀석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토진아!” 하지만 녀석은 들은체만체 ..

겨울 감나무는 텃새들의 식량창고다

늙은 감나무가 모든 잎을 떨구고, 까치밥만 잔뜩 매달았습니다. 봉구지산 자락에서 최대한 줌인으로 잡은 이미지입니다. 서도교회가 감나무를 배경으로 바싹 다가섰습니다. 작년 겨울은 20년 만에 주문도 앞바다에 얼음이 날 정도로 추웠습니다. 감나무는 추위에 약한 과수 중의 하나입니다. 봉구지산을 등지고 바다를 앞마당으로 삼은 느리 마을 중앙에 자리 잡은 감나무는 수령이 50살 정도 되었습니다. 쌓인 연륜만큼이나 슬기롭게 추위를 이겨내고 가지가 부러져라 홍시를 잔뜩 매달았습니다. 추위를 이기지 못한 감나무는 겨울을 나면 고욤나무로 변합니다. 우스개 소리가 아닙니다. 개량종 감나무는 고욤나무 대목으로 접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접을 붙인 감이 달리는 줄기가 동해로 얼어 죽으면, 추위에 강한 고욤나무 대목에서 새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