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비둘기 3

멧새의 절망

바야흐로 절기는 곡식을 깨우는 비가 내린다는 곡우穀雨를 지나 여름이 성큼 다가선다는 입하立夏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열년 열두달 대빈창 바위벼랑을 반환점으로 삼은 산책은 오늘도 여지없습니다. 날이 궂지 않은 이상 하루 세 번 식후 산책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절기는 신록이 무르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하루 산책에서 만나는 새의 숫자는 수십에서 수백 마리는 족히 될 것입니다. 계절별로 만나는 새들을 텃새와 철새를 불문하고 나열하면 노랑턱멧새, 종다리, 박새, 오목눈이, 곤줄박이, 동고비, 까치, 직박구리, 멧비둘기, 딱따구리, 흰뺨검둥오리, 소쩍새, 매, 괭이갈매기, 방울새, 까마귀, 딱새, 뻐꾸기, 중대백로, 물총새, 파랑새, 제비, 휘파람새, 찌르레기, 황로, 노랑부리백로, 후투티, 두루미, 청둥오리, ..

멧비둘기의 좌절

바야흐로 절기는 입춘立春을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절기로 24절기 가운데 첫 번째 절기입니다. 이날 아침은 ‘입춘을 맞아 큰 복이 있을 것이다’라는 입춘대길立春大吉과 ‘양의 기운이 일어나서 경사스러운 일이 많을 것이다’라는 건양다경建陽多慶을 대문이나 기둥에 붙였습니다. 멧비둘기는 이 땅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텃새로, 몸길이는 33㎝ 정도입니다. 온 몸은 잿빛과 포도주색으로 뒤덮였고, 목의 양옆 잿빛 깃털에 가로띠 모양의 얼룩점이 몇 가닥 있습니다. 깃털마다 가장자리가 녹이 슨 것 같은 무늬가 새겨졌습니다. 비둘기의 귀소성歸巢性을 이용한 통신용으로 문서 비둘기가 옛날부터 폭넓게 이용되었습니다. 열년 열두 달 쉬임 없는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산책은 오늘도 여지없습니다...

진돌이는 순하다.

날이 더워지자 진돌이는 밤잠을 밖에서 잡니다. 낮은 그늘지는 방에 들어가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 눈을 감습니다. 경사면을 밀고 앉힌 창고 벽은 시원합니다. 밤새 폭우가 퍼붓다 주춤한 새벽 고라니가 다녀가셨습니다. 물먹은 땅콩 밭에 되새김질 동물의 발자국이 또렷합니다. 창고에서 가장 먼 두둑 끄트머리 땅콩 잎이 뜯겼습니다. 진돌이는 창고 한 칸에 방을 들였습니다. 곤한 새벽잠에 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진돌이를 놀립니다. “진돌이는 바보구나. 고라니가 왔다 간지 모르고 잠만 처자고.” 진돌이는 텃밭 작물을 넘보는 짐승들에 무신경합니다. 멧비둘기들이 싹튼 콩의 떡잎을 모조리 따먹어도 본체만체 입니다. 텃밭지기 임무를 망각한 진돌이입니다. 진돌이는 너무 순한지 모르겠습니다. 목에 이어진 개줄은 강아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