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헛디디며 헛짚으며

대빈창 2016. 11. 2. 07:00

 

 

책이름 : 헛디디며 헛짚으며

지은이 : 정양

펴낸곳 : 모악

 

- 그 상을 받으며 시종 소년처럼 쑥스러워하던 선생님의 표정이 후배들을 조용히 미소 짓게 했다. 얼마나 아름답고 부러운 풍경이었던가. 그날 ’아름다운 작가상‘의 시상식은······. - 2002년 '젊은작가포럼'이 제정한 제1회 ’아름다운작가상‘ 시상식 장면을 떠올리는 시인 박남준의 산문집 『스님, 메리크리스마스』를 통해 정양 시인을 알게 되었다. 이 상은 젊은 작가들이 존경하는 선배 작가를 해마다 감사와 존경을 담아 시상하는 진정성이 담긴 문학상이었다. 시인의 최근 책을 찾았다. 산문집 『백수광부의 꿈』을 뒤로 미루고 시집부터 손에 넣었다.

펴낸 곳 모악 / 출판등록 2016년 1월 21일 / 주소 전북 전주시 덕진구 / 모악시인선 1 / 1판1쇄 펴낸 날 2016년 4월 4일

모악 출판사는 전북 출신 문인 20여명이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추렴해 문을 연 지역출판사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2편이 실렸고, 발문은 제자 시인 이병초의 「살아 있는 문명의 그늘」이다. 제자는 스승의 고결의 삶을 이렇게 떠받들었다. “한 사람의 생애를 읽는 기준은 그가 사회적 지위를 얼마나 획득했는가가 아니라 그가 시대의 모순에 얼마나 다가섰는가가 되어야 한다.”(97쪽) 시인은 평생을 “불평등한 지배논리에 갇혀 살지 않으려면 속된 것을 일절 끊어버리는 삶의 태도”(105쪽)로 일관했다. 한마디로 대쪽 같은 삶이었다. 출판사의 첫 책은 전북지역의 상징적인 시인의 시집이었다.

1부 「응답하라 1950」는 시인의 중고교 시절을 회상한 작품들로 군사독재 정권의 단발마적 발악을 해학과 익살로 노래했다. 2·3부는 “어이없고 황당한 역주행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참담한 내면을 그렸고, 4부 「황하」는 교환교수로 중국에 갔을 때 썼던 작품들이다. 마지막은 표제를 따 온 「핏발 선 눈을 가리고」(38 ~ 39쪽)의 부분이다.

 

사실 나는 이제껏 외눈으로 살지 않았나 / 핏발 선 눈을 안대로 가리고 거리에 나선다 / 남은 눈알에 헛힘이 쏠리고 / 발이 헛디뎌지고 손잡이가 헛짚인다 / 시력이 형편없어도 무슨 구실을 했던지 / 외눈으로 세상을 가늠하기가 만만찮다 / 핏발 선 눈을 끝내 가리고 / 헛디디며 헛짚으며 갈 데까지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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