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대빈창 2016. 11. 4. 05:05

 

 

책이름 : 내 옆에 있는 사람

지은이 : 이병률

펴낸곳 : 달

 

시집 -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산문집 -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시인의 시집은 한 권도 없고, 여행 산문집 세 권만 손에 잡았다. 첫 여행 산문집 『끌림』이 2005년에 나왔고, 두 번째 산문집은 2012년에 나왔다. 세 번째 산문집은 첫 산문집이 나온 뒤 정확히 10년이 되는 2015년에 출간되었다. 『끌림』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가 이국적인 풍경의 해외여행을 담았다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국내편이었다.

책은 추천사, 표사, 해설 모두 없다. 차례마저 없다. 심지어 쪽수마저 없다. 불친절한 편집(?)으로 나는 일일이 손으로 셀 수밖에 없었다. 꼭지는 54개였고, 사진은 140장이 실렸다. 시인에게 여행은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사람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었다. 시인은 말했다. “낯설고 외롭고 서툰 길에서 사람으로 대우받는 것, 그래서 더 사람다워지는 것, 그게 여행”이라고. 시인의 발길은

 

계룡산 / 괴산 / 의정부 / 부안 / 양평 / 진안 / 흑산도 / 제천 / 제주도 / 문경 / 전주 / 추자도 / 단양 / 태백 / 의성 / 동해 / 비양도

 

등 이 땅 구석구석 방방곡곡과 섬에 닿았고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눈 먼 엄마를 모시고 산에 오르는 딸, 시인의 사인회 저녁 술자리에서 우연히 조우하는 헤어진 남녀, 문 닫은 술집 마당에서 깡술을 마셔대는 사내들, 일과가 끝난 동물원 돌고래와 만남, 부안 채석강 작은 바닷가 당사구의 돌 틈 게들,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은 안마사의 여자, 잘난 쌍둥이 형에 대한 동생의 열등의식, 베트남 이주노동자 지오와의 단양 여행, 눈길 골목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시인의 차를 빼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사내, 딸아이 선물로 원숭이 새끼를 들여오다 세관에 들킨 항해사, 시인은 사람과의 상처로 섬에 스며들어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다치고, 동네 전철역 책장에 문학잡지를 꽂아 놓았다.

나의 눈길을 오래 잡아 둔 꼭지는 「달빛이 못다 한 마음을 비추네」 이었다. 시인은 낯선 전화번호를 통해 부음을 들었다. 오래전 문경 산골에서 만난 사과 농사를 지으시는 어르신의 막내아들이었다. 장례식장의 영정사진은 그때 시인이 몇 장 찍어 인화해 보내 드린 사진 중 하나였다. 노인은 일본 사세보(佐世保)에서 태어났는데, 시인의 가봤다는 말에 호감을 표하셨다. 시인은 노인에게 몇 사발 막걸리를 얻어 마셨고, 안주로 사과를 먹었다. 노인은 아들들에게 시인 얘기를 많이 하고, 시인의 책을 모두 소장했다. 시인은 조문을 마치고 막내아들의 차로 문경 노인 집으로 향했다. 시인은 노인의 빈집에서 소주와 사과로 요기를 하고 노인이 쓰던 이불을 깔았다. 방문을 열자 달빛이 환하게 들이치면서 시인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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