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처음처럼 - 신영복의 언약

대빈창 2017. 1. 5. 04:06

 

 

책이름 : 처음처럼

지은이 : 신영복

펴낸곳 : 둘베개

 

「신영복 서화 에세이」, 엮은이 - 이승혁·장지숙, 3부 - 175편, 2007년 2월 1일 초판 1쇄 발행, 랜덤하우스

「신영복의 언약」, 지은이 - 신영복, 4부 - 215편, 2016년 2월 22일 개정신판 1쇄 발행, 돌베개

 

성질 급한 내가 예약판매로 손에 넣은, 책장에 어깨를 겯고 있는 두 권의 『처음처럼』이다. 두 권 모두 예쁜 박스에 담겼는데, 부록으로 초판은 필사 노트가, 개정신판은 육필 영인본 「청구회의 추억」이 담겼다. 「여는 글」은 초판 서문을 옮겼는데, 끝에 주석이 붙었다. 2015년 유명을 달리하신 엮은이 고(故) 이승혁 님의 명복을 빕니다. 초판본의 엮은이들은 〈더불어 숲〉 모임의 일꾼이었다. 책은 신영복 선생의 글과 그림 고갱이를 한 자리에 모은 잠언집이다. 선생은 지난해 2월 15일 향년 75 세로 별세했고, 22일 책은 발행되었다. 선생은 병상에서 원고를 추리고 수정, 보완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선생은 애착을 갖고 책을 다듬었다.

 

신호등을 안 본 분은 없을 겁니다. 보통 신호등인데, 빨간불, 노란불, 화살표, 파란불에서 다 갈 수 있는 방향이 우회전입니다. 우회전은 언제든지 해요. 좌회전은 반드시 화살표를 받아서 가야 됩니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의 위상이 이와 같지 않은가? 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신호등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을 합니다. 이거구나. 이거구나. 이게 우리 현실입니다.

 

단장(短章) 「신호등」(282쪽)의 전문이다. 나는 이 꼭지를 접하고 이 땅의 사회주의자 김규항을 떠올렸다. “남한에서 진보주의자는 스스로 선택하여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지만, 보수주의자는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가만있어도 저절로 보수주의가 된다.” 선생은 초판에서 제목을 바꾸거나, 내용을 첨삭했고, 그림도 많이 교체했다.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첫 글은 「처음처럼」이고, 마지막 글은 「碩果不食(석과불식)」이었다.  선생은 말했다. “『처음처럼』은 역경을 견디는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경을 견디는 방법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길 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햇빛출판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돌베개』,『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나무가 나무에게』, 『강의』, 『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변방을 찾아서』, 『담론』, 『처음처럼 - 신영복의 언약』. 선생이 엮거나 지은 책들에 손때를 묻혔다. 나는 새해 첫 독서 리뷰로 선생의 책을 올렸다. 두 해 끊어진 맥을 이을 수 있게 되었다. 책날개의 저자 이력에 생몰연대(1941 ~ 2016)가 붙었다. 마음먹고 손에 넣은 『신영복의 엽서』. 예약판매로 내일모레 손에 들어 올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한학자 기세춘 선생과 편역한 부피가 꽤 나가는 『中國歷代詩歌選集』 네 권. 새해 첫날 아침 책장을 바라보는 나는 큰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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