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지은이 : 김성규
펴낸곳 : 창비
책장이 가난하게 느껴졌다. 시인 도종환의 시집은 「담쟁이」가 실린 『당신은 누구십니까』가 유일했다. 시인의 등단 30주년 기념시선집으로 대표시 99편을 선한 『밀물의 시간』이 눈에 뜨였다. 시인 공광규는 『말똥 한 덩이』로, 시인 김근은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로,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이 시집 저 시집에 실린 작품해설로 눈에 익었다. 엮은이에서 시인 김성규가 낯이 설었다. 시인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었다.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로 시작되는 「鄕愁」의 정지용과 동향이었다. 표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창비, 2013)는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었다.
언덕에서 수박을 떨어뜨린 임신부 / 구제역 돼지 살처분·마을우물 사내 사체 / 폭풍에 휘말려 허공에 떠오른 집 / 퇴화한 쥐인간 / 장기 밀매 어머니 / 낚시를 삼켜 피 흘리는 두루미 / 꼽추송아지 사체 / 절름발이 장님과 딸의 구걸 / 월세방 고독사 / 사료 과식 수족관 비만 잉어 / 여인의 눈물 한 컵 / 어린아이를 잡아먹은 가물치 / 얼음에 쟁여 진 시신 / 늙어가는 창녀들 / 사자의상(死者衣裳)
“시가 없었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미워하며 살았으리라.”(147쪽) 시인의 말이다. 시집은 불길한 기운, 파국의 전조, 기괴한 증오, 번져가는 공포, 절멸의 고통이 내뿜는 끔찍한 잔혹성으로 질펀했다. 2016년 겨울(병신년 동지) 한반도를 휩쓰는 AI 공포의 생지옥을 닮았다. 나오미 클라인(Naomi Klelin)의 『쇼크 독트린(The SHOCK DOCTRINE)』(살림, 2008)이 떠올렸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다름 아닌 재난, 경제적 쇼크를 도구로 삼아 이윤을 창출하는 보수우파의 충격을 통한 재난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라는 사회지배 메커니즘을 밝혔다.
죽은 물고기를 삼키는 / 두루미 / 목을 부르르 떤다
부리에서 삐져나온 / 푸른 낚싯줄 / 흘러내리는 핏물
목구멍에 걸린 / 바늘을 토해내려 / 날개를 / 터는 소리
한번 삼킨 것을 / 토해내기 위해 / 얇은 발자국 늪지에 남기며 /걸어가는 길
살을 파고드는 / 석양을 바라보며 / 두루미가 운다
「시인」(56 ~ 57쪽)의 전문이다. 어느날 저녁의 대빈창 해변 산책. 무리를 잃은 갈매기 한 마리가 발소리에 놀라 날개를 퍼덕였다. 녀석은 허공에 떠오르지 못하고 바다에 끌려 당겨지듯 떨어졌다. 활공비행의 명수 갈매기가 할 짓이 아니었다. 제방에서 백사장으로 내려섰다. 놀란 녀석의 날개짓이 요란했다. 녀석의 부리에 물린 낚싯줄이 시들어가는 햇살을 튕겨냈다. 퍼덕일수록 낚시의 미늘은 녀석의 목구멍을 파고 들 것이다. 어쩔수 없이 제방으로 올라섰다. 수평선의 하늘이 핏물을 토했다. 처참한 노을을 뿌리며 시뻘건 해가 바다에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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