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캐비닛

대빈창 2007. 8. 5. 15:49

 

 

책이름 : 캐비닛

지은이 : 김언수

펴낸곳 : 문학동네

 

김언수의 장편소설 '캐비닛'은 제12회(2006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다. 문학동네소설상은 발표되지 않은 순수창작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한편의 수상작을 연말에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1997년 제1회 수상작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시작으로 그동안 8편의 수상작을 탄생시켰다. 나는 저자와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부문 당선작 '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로 일면이 있었다. '캐비닛'은 독자에게 이런 상상력도 있을 수 있다는 낯선 세계를 불쑥 들이민다. 그것은 기발한 소재와 이야기 전개의 낯설음에서 기인한다. 옴니버스(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독립된 짧은 이야기를 늘어놓아 한편의 작품을 구성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는 스토리의 전개가 아닌, 그것을 조립하는 방식, 즉 플롯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독자들은 장편소설이란 필연적으로 서사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동안 읽어왔던 소설구조가 당연히 그랬으니깐. 어찌보면 황당하고 낯선 이야기 조각들로 구성되어 이런 형식도 소설일 수 있을가 하고, 의문이 든다. 소설은 괴물 같은 인간들이 등장해 판타지같은 형식인지, 현실 같은 판타지인지 구분이 모호하게 전개된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그것을 1920년대 초반 러시아 형식주의 비평가들이 말하는 '낯설게 하기론'을 '곰탕 뚝배기에 냉면을 담아오면 그것은 냉면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 만들어진 곰탕일 뿐이다.'라고 옮길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캐비닛'은 35개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모인 장편소설이다. 그 에피소드에는 심토머(symtomer)라는 '징후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현재의 인간과 새로 태어날 미래의 인간 사이, 즉 종의 중간지에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심토머들은 세상의 주류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들이다. 어떻게보면 패권적인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말아먹은 현재, 지나친 개인주의와 물신숭배의 늪에 빠지지 않은 순수한 인간종족들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는 물신 숭배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의 말기적 자본주의 체제가 에이리언처럼 이타적인 인간을 숙주삼아 심토머를 양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승자독식의 천민 자본주의의 이 땅에서 못 배운자, 힘 없는 자, 가진 것이 없는자에 대한 천민적 시각이 '이상징후'를 키우는 잠재적 심토머인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의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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