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생각하는 그림들

대빈창 2007. 7. 24. 16:52

책이름 : 생각하는 그림들 정 / 생각하는 그림들 오늘

지은이 : 이주헌

펴낸곳 : 예담

 

내가 이주헌을 처음 만난 것은 학고재 신서를 통해서였다. 언제인가 말햇듯 나는 출판사 중 학고재를 가장 신뢰한다. 신서 1 고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잡고부터였다. 학고재 신서가 출간되면 내용이나 저자를 불문하고 무조건 구입했다. 인연이 되려는 지 신서 3, 4로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 2'가 나의 손에 들려졌다. 그 뒤로 나는 서양 미술의 자상한 길잡이의 애정어린 손길을 쫒아 한걸음 두걸음 뒤뚱거리는 발걸음으로 그 길을 따라갔다. 그 길에서 만난 책들이 그 유명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와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등 이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미술 멘토를 자임하는 이주헌의 마니아라 할 수 있다. 서양 미술에 까막눈을 벗어난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 서적에 들어가면 습관적으로 검색창에 '이주헌'을 입력하고, 신간이 눈에 뜨이면 무조건 시장바구니에 담는다.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 출간물을 제외하고 모든 그의 저작물들이 나의 책장에  꽂히게 된 사연이다.

생각하는 그림들 시리즈 중 '정'은 46배판의 다소 큰 판형의 한 면을 차지하는 50장의 도판이 실려있다. 그리고 그림 한점마다 이주헌은 두 쪽 분량의 사람살이의 모습에 대한 그림 소개를 덧붙였다. 편안한 그림읽기의 조언자 역할을 자임하는 저자의 설명은 복잡하고 난해한 서양화의 미술사조나 미술사에 문회한이더라도 독자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자신만의 눈을 갖게 도움을 준다. 나는 그것을 그의 따뜻하고 정감있는 품성에서 연유한다고 믿는다. '오늘'에 실린 작품과 지은이의 글을 대조하면서 천천히 읽어 나가던 나의 눈길은 38번째 작가 박성태의 작품을 접하자 돌연 '의식의 정전현상'을 일으킨다. 박성태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외면받아 온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인간의 실존에 대한 관심을 설치 형식으로 조명한다. '98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의 '일식'이라는 작품은 산 사람의 몸을 거푸집으로 이용해 흙으로 떠낸 형상을 전시장 흙바닥에 깔고, 사면 벽에 2,000개가 넘은 찌그러진 사람 얼굴 형상을 설치했다. 작품은 관람자들에게 대번 '폭력적 사건의 주검들을 모아놓고 집단적인 희생제'를 올리는 느낌을 내세운 것이다.

책씻이 후 나는 덮었던 책갈피를 뒤적여 80년대 독재정권의 탄압에 정면으로 맞섰던 민중미술가들의 작품에 다시한번 애정어린 눈길을 보낸다. 작가 연행과 작품탈취가 일상적이었던 시절이었다. 우리 현대사의 모순과 질곡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형상화해오다 '89년 '모내기' 사건으로 구속과 작품 압수의 고초를 겪었던 신학철의 작품 '소똥', 민중주의적 세계관을 담은 예술세계를 형상화하다, '민족해방운동사' 사건으로 물고문이라는 모진 고초를 겪은 홍성담의 '몽유도원도', 김경인, 강요배, 남궁산, 손장섭, 최민화 등의 작품에 나의 눈길은 최루가스에 충혈된 것처럼 붉어졌다. 그러고보니 내가 도판이 아닌 실물로 최초로 접한 서양미술은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거리의 걸개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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