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새참
지은이 : 성석제·윤대녕외
펴낸곳 : 북스토리
윤대녕, 성석제, 이순원, 권지예, 구효서, 고은주, 박덕규, 은미희, 권태현, 이혜진, 신승철, 이승우, 이명랑, 하성란, 양귀자, 김이은. '새참'에 글을 실은 16명의 소설가들을 차례대로 나열한 순서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장편소설(掌篇小說 또는 콩트)로 단편소설과는 분량에 의해 구분된다. 흔히 단편소설은 200자 원고지 70매 내외이고, 꽁트는 4 ~ 20매 분량의 짧은 이야기 글을 말한다. 이보다 더 짧은 글로는 흔히 미니픽션(minifiction 또는 엽편소설)로 A4용지 1매의 초미니 소설이 있다. 엽편소설(葉篇小說)은 말 그대로 나뭇잎 한 장에 다 적을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세계 문학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남미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적 작가 고 보르헤스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마르케스를 대표작가로 손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확고한 장르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 소설 독자들은 중·단편을 지나치게 편애한다. 단적인 근거로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은 매년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다. 올해로 연륜이 30년을 넘어섰는데, 제1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이 아직 속간되고 있는 실정이다. 출판사 측은 세계 문학상 작품의 경우에도 볼수 없는 희귀한 현상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나의 삐딱한 시선으로는 우리 문단과 독서풍토의 왜곡·굴절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새참'에 글을 실은 작가들은 현재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인기좋은 중진과 새로 눈에 띄는 몇 신진들로 구성되었다. 다시말해 거대 언론사, 출판사가 주관하는 문학상(이상, 동인, 황순원, 이효석, 한국일보, 동서, 오늘의 작가상 등) 수상 작가들이다. 하지만 글이 실린 차례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16명의 작가 중에서 아무리 윤대녕, 성석제가 잘 팔리는 작가라지만, 겉표지에 '성석제·윤대녕외 지음'이라고 굳이 티를 내야만 하는가. 가위치는 횟수가 엿장사 마음이듯이, 책을 찍어내는 출판사 마음대로 차례를 정하는 것인가. 등단년도를 우선시하는 문단에서 예우 차원에서라도 양귀자·이승우의 작품이 대표작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나의 삐딱한 글투가 문제이거나, 돈되는 것이라면 물불 안가리는 천박한 상업주의가 그래도 선비연하는 출판계도 접수했다는 사실이 못내 씁쓸해서 한마디 던졌다.
한번 눈에 나면 모든 것이 그릇되게 보이는 법이다. '새참'은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사이 먹는 음식을 말한다. 농번기에 농민들은 고된 육체노동으로 하루 3끼의 식사외에 오전 10시쯤 그리고 오후 4시쯤에 참을 먹는다. 어릴 때 기억을 되살리면 어르신네들은 가장 흔한 새참으로 국수에 막걸리를 곁들여 드셨다. 출판사의 기획 의도는 시인들의 좋은 시를 모은 시집은 그동안 꾸준히 출판되었지만, 여러 소설가들의 작품모음집은 없어 특별한 주제를 선정하지 않고, '재미'라는 공통분모로 원고를 청탁했다고 한다. 농민들이 힘든 일을 하다 짬을 내어, 논두렁에 걸터앉아 먹는 '새참'을 전통 한정식으로 차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책씻이 후의 나의 느낌은 길고 지루한 일상의 소소한 인생살이를 나열한 16개의 소품에 불과했다.
한 가지만 더. 내용과 형식이 따로 노는 불유쾌함이다. 가볍기 그지없는 '재미'를 추구하는 내용에, 더군다나 분량도 문고판 수준인데, 굳이 어울리지 않는 양장본으로 만들어져, 휴대하기도 불편하고, 책값이 비싸다는 사실은 고약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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