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서양미술 400년展 : 푸생에서 마티스까지
지은이 : 다비드 리오
옮긴이 : 박선아, 박주원
펴낸곳 : SBS, (주)지엔씨미디어
인터넷 서적에서 주문한 책이 2년6개월동안 택배 골판지 박스에 잠들어 있었다. 판형이 국배판인지라 휴대하기가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의 손길이 머뭇거려진 이유는 책의 내용이 도록이라는 점이었다. 2005년 정초, 나는 십자인대 파열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입원실 침대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리다 눈길에 잡힌 신문 헤드라인이 '서양미술 400년전' 서울에 온 유럽미술관이었다. 기사 내용은 르누아르 - 앵그르 등 거장 88명의 명화 119점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4월 3일까지 전시된다는 것이다. 다행히 수술결과가 좋아, 퇴원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던 나는 생뚱맞게 전시회장 한가운데 서있는 나를 상상하며 무료한 시간을 이겨냈다. 그리고 인터넷 서적에서 가격도 만만치않은 이 도록을 신청한 것이다. 우선 도록으로 거장들의 회화를 일별하고, 어느정도 걸음걸이가 안정된 다음 미술관으로 향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워낙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뛰어난 우리 사회생활 기반시설이 목발을 짚고, 지하철을 타고 전시회장으로 달려간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짖인가.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조상들의 생활지혜를 피부로 느끼며, 이 책은 병원 입원실 한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주인을 따라 귀향했다. 그리고 2년반이 지나서 도록이라는 제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외딴 섬의 적막한 고요 속에서 다만 한권의 책으로 시간 때우기용으로 전락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 주인을 잘못만난 기구한 운명의 도록인 것이다. '서양미술 400년展 : 푸생에서 마티스까지'는 전형적인 도록 형식을 취했다. 한가람 미술관에 전시된 119점의 모든 작품이 도판으로 수록되었다. 한마디로 서양미술 400년은 선과 색채의 대립과 조화의 미술사라고 규정할 수 있다.
되새김질을 멈출려니 어디인가 밋밋한 느낌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와 프랑스와의 아직 풀지못한 숙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천문학적 값어치를 자랑하는 귀중한 문화재를 서울도심 한복판에서 전시한다는 것은 양국간의 문화교류에 일획을 그었지만, 약탈 문화재 반환이라는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1993년 프랑스의 TGV가 우리나라의 고속철도 부설권을 따내면서, 프랑스 미테랑 정부와 문민정부는 외규장각 도서반환에 대해, 상호 교환방식에 구두 합의했다. 1866년 병인양요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총 도서는 297권이나 된다. 더구나 우리나라에 없는 유일본이 30권이었다. 하지만 이후 고속철도 부설권만 프랑스로 넘어가고, 미테랑 대통령 방한시 '휘경원원소도감 의궤' 1권만 돌아왔다. 여기서 나는 우리 소장학계의 경직된 협상력을 탓하고 싶다. 합의된 등가교환 방식의 내용은 외규장각 어람용 도서와 우리나라의 비어람용 복본을 상호교류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교환방식으로 돌려받는다는 것은 국민 정서에 어긋난다고 협상 대표는 어깃장을 놓았다. 결과적으로 지금 우리 입장은 무엇인가. 닭 쫏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아닌가. 관심있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어람용(임금이 보는 책)과 비어람용은 하늘과 땅 차이다. 고려궁지 터에 자리 잡았던 외규장각. 그 입구 계단 양옆에 배롱나무가 심겨져 있었는데, 아직 살아있는 지 나는 모른다. 기후가 맞질 않아 비루먹은 강아지 몰골로 서있는 두 그루의 나무와 한여름 남도답사 시, 마주쳤던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입구의 배롱나무 군락지의 화려한 장관. 비교가 어색하지만 어람용과 비어람용의 차이처럼 내게는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