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삶은 기적이다
지은이 : 웬델 베리
옮긴이 : 박경미
펴낸곳 : 녹색평론사
'녹색평론'이라는 개념이 뇌리의 한 구석에 자리잡은 사람이라면 필시 우리 사회의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다고 할수 있다. '삶은 기적이다'라는 얼핏 보면 종교적 전도서 같은 표제의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출판사가 녹색평론사이기 때문이다. 관심 분야의 신뢰할 수 있는 출판사로 나에게 인식된 제일 큰 이유는 무엇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를 잡고부터 였다.
'녹색평론'은 문학평론가인 김종철 전 영남대 교수가 '91년에 대구(이것이 중요하다. 이 땅의 극단적인 출판문화의 중앙집중화 현상을 이겨내고)에서 발행인과 편집인을 도맡아 발행한 격월간 환경생태 전문잡지다. 창간이후 15년 세월이 흐른 지금, 환경생태 도서의 바이블이라 할 '오래된 미래'를 비롯한 35여권의 단행본을 간행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의 재건에 이바지한다'는 모토를 세운 출판사답게 책을 만드는 용지는 모두 재생지를 사용해 신간 서적도 오래 묵은 나무결의 색을 띨 수밖에 없다. 또한 내가 녹색평론사에 대한 짝사랑이 더욱 심화된 계기는 황우석 박사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줄기세포 원천기술 유무와 책임론에 집착하는 과대망상증 환자가 부지기수다. 사태가 터지기 이전부터 줄기세포 연구의 '생명윤리'와 '재앙적 징후'를 국내에서 초지일관 경고한 것은 '녹색평론'이 유일하다. 이에 반해 냄비적 경향을 여지없이 드러낸 거대 언론사(하긴 그들의 극우보수적 속성상 어쩔수 없다)의 그 큰 목소리는 어디로 갔는가? 고작해야 사태가 국민들의 뇌리에서 시들어갈 만하면 그 특유의 '양비론'으로 자신의 책임을 어물쩍 넘기지 않았는가.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되새김글을 잡으면서 나의 손길은 자꾸 머뭇거려진다. 그것은 이 책의 내용이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에 대한 서평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통섭'을 잡지 못했다. '통섭'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은 우리에게 낮설지 않은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다. 여기서 '통섭'은 그가 꾸준히 노력을 전개해 온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결과물이다. 원제 'consilience'는 '설명의 공통 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써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나의 비관적 견해는 에드워드 윌슨의 '지식의 대통합'이나 웬델 베리의 비판적 대안도 현실에서는 요원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연과학이 주도권을 쥐고 대통합을 이룬다거나, 그것의 대안으로 종교나 예술의 기적적인 성격으로 인식의 고양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을 '돈의 가치'로 치환시키는 자본에 종속된 사회에서는. 선결과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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