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지은이 : 황대권
펴낸곳 : 열림원
황대권은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1985년 신군부는 방학을 맞아 고국을 찾은 저자를 첫날밤 안기부 남산 지하실로 끌고가 60일간 고문과 구타로 간첩을 만든다. 저자는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유학시 토론모임의 한 동료가 귀국길에 북한을 방문한 사실이, 간첩 죄목을 뒤집어쓰고 무기징역형을 받는 빌미가 되었다. 30대에서 40대 중반까지 13년 동안 인생의 황금기를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영어(囹圄) 생활로 보낸다. 그 고통과 분노의 양심수 생활을 이겨내는데 위안이 된 것은 감옥 한 구석의 야생초 화단이었다. 야생초를 가꾸면서 자연스럽게 생태주의자가 된 그가, 그 경험을 편지 형식으로 기록하고, 볼펜으로 야생초를 사실적으로 그려 책으로 출간된 것이 '야생초 편지'다.
1948년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이래 수십만 명이 처벌 받았다. 제정당시 1년에 11만명이 이 법으로 구속되었다.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국가보안법으로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아직도 이 산하를 떠돌고 있는데, 법의 존치를 고집하는 이 땅의 현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다 죽어가는 법이 산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민통선 평화기행'의 저자 사진작가 이시우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려 30일 넘게 단식투쟁 중이다. 나의 책장에는 황대권의 책 3권이 꽂혀있다. '야생초 편지' '민들레는 장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빠꾸와 오라이'다. 앞 2권의 책날개에는 Amnesty Internationl(국제사면위원회) 40주년 기념달력에 실린 저자의 사진이 붙어있다. 실제 저자가 감옥에서 풀려난 직접적인 요인은 엠네스티 전 세계회원들의 우리 정부에 대한 항의편지가 크게 작용했다. 나는 저자와 같은 하늘을 쳐다보는 동족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막 출간된 '빠꾸와 오라이'에는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대숲에 서서 얼굴가득 환하게 웃음짖고 있다. 저자는 요즘 생명평화결사운동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생태공동체와 농업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책 소개보다는 저자에 대한 말이 너무 많았다. 15년 전 그 세월. 나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말만 들어도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광포한 억압의 시대가 드리운 족쇄에서 나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주변인물 두 명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나는 노가다를 하며 옥바라지를 했다. '대빈창'에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한 언젠가는 그 시절을 반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야생초 편지'의 2탄이라 할 수 있다. '야생초 편지'는 광주학살을 저지르며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에 의한 감옥생활로 '고뇌하는 지식인'의 처지에서 우리에게 보낸 대안적 삶에 대한 편지글이다. 반면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환경 생태운동가로서의 삶을 직접 실천하면서 '수행하는 지식인'의 입장에서 쓴 편지글이다. 이 책에는 환경생태라는 화단에 46개의 민들레가 활짝 펴있다. 저자가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환경생태의 문제점과 그 대안에 대한 고민이 꽃 피었고, 사회적 이슈가 된 생태계 파괴나 환경오염에 대한 저자의 실천적 모색이 한 구석에 봉오리를 내 밀었으며, 어릴 적 강변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민들레에 대한 회한이 서려있다. 그리고 '야생초 편지'의 연장선에 있는 글들과 생태주의 시대의 깨우친 삶에 대한 모색이라는 민들레가 한껏 바람에 부풀린 채 허공에 날 채비를 한다.
책갈피를 덮고 나니, 언뜻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 땅은 그동안 장미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껍데기(세계화라는 허울좋은 신자유주의 정책)만 모방한 것이다. 즉 세계 깡패 제국주의 미국을 흉내내어, '아류 제국주의'가 되어 어깨에 힘주고, 똘마니 노릇에 희희낙낙하고 있다. 지은이의 말처럼 부국강병의 애국주의에 눈이 멀어 독재자를 영웅으로 둔갑시켜 갈 때까지 가자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장미의 껍데기라는 화려함에 눈이 멀어서, 우리는 민들레의 진정으로 소박한 알맹이를 못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다. 지구라는 '타이타닉 호'는 환경 재앙이라는 거대한 빙산을 만나기 5분전의 상황인 것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샴페인을 터뜨일 때, 그 와인은 이미 독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