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명묵의 건축
지은이 : 김개천
찍은이 : 관조 스님
펴낸곳 : 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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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한국 전통의 명 건축 24선'이 말해주듯, 지은이의 건축을 통해 본 한국인의 미적 세계를 드러내기 위한 책의 목차다. 이중 나의 발길이 머문 곳은 대략 1/3 정도였다. 80년대 이념의 시대에 나는 20대를 보냈다.그리고 90년대 민족과 민중이라는 거대담론이 사라진 자리에 종이장보다도 가벼운 개인주의라는 틀 속에 이념은 매장되었다. 나는 그것이 쿨하다는 요즘 세태의 가벼움으로 보일 뿐이다. 그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배낭을 메고 1년에 한번은 산중사찰을 찾았다. 불교를 믿음으로 갖은 신도가 아닌, 다만 적묵과 고요 속에서 나를 뒤돌아보고 싶었다. 마침 '93년도에 현 문화재청장인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이 출간되어 답사 열풍이 일고 있었다. '명묵의 건축' 차례에서 그래도 나의 발길이 머문 곳은 작은 암자를 제외한 제법 큰 절집이었다. 그때 나의 인식은 그 정도가 한계였다.
이후 부지불식간에 나의 발걸음은 서원, 서당, 정원, 산성, 궁궐 등 다양한 분야의 우리 전통 고건축으로 향했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끌리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뚜렷이 자각할 수 없었다. 배낭을 꾸리면서 그 시절 '아는만큼 느낀다'는 화두에 매달린 운수납자답게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갖은 종류의 답사기, 문화재 해설서를 챙겼다. 돌베개에서 출간된 답사여행 시리즈, 한국건축 해설서 등과 민속학자, 여행전문가의 답사기를. 나름대로 그 무엇인가를 찾아보려는 노력이었다. 지금 '명묵의 건축'을 일독하니 어렴풋이 감이 잡힌다. 그동안 짙은 안개에 휩싸인 나의 사고체계로는 당연히 먼길을 에돌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나의 일례로 나는 우리나라 4대 별서정원의 하나인 경북 영양 서석지를 찾아가면서, 기계적인 사고로 천원지방(天圓地方)을 떠올렸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음양오행사상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창덕궁 부용정의 조형원리를 이렇게 설명하면서 보기좋게 나의 미망을 깨뜨렸다. '형상이 아름다운 연못이 아니라 단순한 사각형 땅의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는 하늘은 물과 하늘과 숲이 삼중적 은유로 겹쳐져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천중(天中)의 하늘이 되고, 그 연지의 공중(空中)에 있는 당주(當洲)는 마치 원형의 별처럼 우주속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적인 동시에 관념적으로 표현된 또 다른 자연이다.' 그렇다. 저자는 '지식으로 접근하면, 즉 많이 알수록 그 앎이 족쇄가 되어 자유로운 느낌을 제약할 수 있는 것'이 우리 고건축이라고, 독자들에게 할을 내뱉고 있었다.
지은이는 인문학적 시각으로 우리 한국전통 건축을 대하라고 일러준다. 당연히 서구적 사고체계의 소유자인 나는 건축학적 조형원리로 그 느낌을 자각했으니, 시야는 짙은 안개에 휩싸일수 밖에 없었다. 덧붙여 한국의 고건축은. 서구가 자연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건축을 만들어 조형과 공간의 관점을 지녔다면, 우리는 자연에 동화하는 건축으로, 우주질서인 자연속의 일부가 되는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우리 고건축의 정신세계를 읽는 안목이 크게 부족하다. 그 부족한 인식 능력의 간극을 다행히도 경지에 오른 관조스님의 사진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몸에 앞서 마음이 먼저 길을 나선다. 초겨울 담양 소쇄원 입구. 대숲에 날리는 눈발은 바라보며 배낭을 짊어진 내가 거기 있었다. '지극히 자연스러워 자연의 광영(光榮)속에서 통연자득(洞然自得)'하게 하는 정원의 묘미를 맛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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