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가상현실
지은이 : 김영무
펴낸곳 : 문학동네
제3회 백석문학상을 받은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가상현실』은 유고(遺稿)시집이 되었다. 시집의 1쇄는 2001년 4월에 찍었고, 시인은 그해 11월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57세였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8편이 실렸다. 해설은 시인 김승희의 「질병의 은유 만들기와 울루루, 꿈의 텍스트 만들기」다. 1부는 시인이 처한 암수술 후 투병을 가상현실로 노래하고, 2부는 호주 대륙 한복판 사막 한가운데 솟구쳐 있는 통바위산 울루루로 대표되는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에서 치유를 노래했다. 3부는 근대 역사와 문명이 낳은 질병을 치유하는 자연. 4부의 장편 굿시 「세계화 블루스」는 신자유주의(글로벌리제이션)가 강제하는 약자의 구조조정을, 세계화에 대한 풍자와 민중에 대한 사랑을 판소리 사설로 노래했다.
허파 한쪽 잘라낸 후 // 추수 끝난 논바닥에 괸 물 속 // 붕어처럼 // 모로 누워서 흘끗 // 석양 비낀 하늘 한쪽 곁눈질한다 // 구름장 시꺼멀수록 // 저녁놀은 어기여차 더욱 붉어라
「수술 이후」(18쪽) 전문이다. 시가 말해주듯 지병은 폐암이었다. 시인 나희덕은 표사에서 “일급수가 아니면 살지 못하는 열목어 같은 심성이 그로 하여금 병을 얻게 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시인은 自序에서 “연륜도 연민도 퇴출되고 오직 경쟁력 하나로 환하게 불밝혀진 나라, 허파에서 밥통으로 간장에서 창자로 모든 칸막이를 허물면서 전이(轉移)가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 알 수 있듯이 안타까운 몸 상태였다.
시인은 문단에 먼저 평론가로 얼굴을 내밀었다. 1990년 〈창작과비평〉에 발표한 『시의 언어와 삶의 언어』로 대한민국문학상 평론부분 본상을 수상했다. 분필을 내던지고 농촌공동체를 꾸려 삽자루를 짊어진 농부철학자 윤구병을 한 시편에서 만났다. 시인과 농부철학자의 허물없는 말투에서 막역한 사이가 짐작되었다. 그렇다. 에코 아나키스트 사이에 무슨 벽이 존재할 수 있을까. 「말」(22 ~ 24쪽)의 부분이다.
야, 너 영무니, 이 씨발놈아, 나 구병이다 / 너 여기 내려와 지내라
변산공동체에서 농사짓기에 바쁜 친구 윤구병의 전화였다. / 며칠 뒤 그는 변산 인근 산야에서 채취한 / 100여 가지 약초를 발효시켜 만든 / 백초효소 두 병을 들고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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