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구관조 씻기기
지은이 : 황인찬
펴낸곳 : 민음사
‘2012년, 마침내 황인찬의 첫 시집이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 박상수(시인, 문학평론가)의 해설 「서글픈 백자의 눈부심」의 첫 구절이다. 시인은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짧다고 할 수 있는 2년만에 상재한 첫 시집은 제31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시에 아둔한 나는 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부족했다. 온라인 서적에서 새로 나온 시집을 일별했다.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두 권을 손에 넣었다. 다른 한 권은 제34회 수상 시집인 황유원의 『세상의 모든 최대화』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5편이 실렸다.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 방이었다 /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 비로소 나는 알았다 / 그것은 하얗고, / 그것은 둥글다 / 빛나는 것처럼 / 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있었다
(······)
사라지면서 / 점층적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 믿을 수 없는 일은 / 여전히 백자로 남아 있는 그 / 마음
해설이 떠올려지는 등단작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16 ~ 17쪽)의 1연과 5연이다. 시를 논하는 평자들은 하나같이 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담백한 시선과 시어(詩語)의 성스러움, 신비감, 고요함을 떠올렸다. 나는 시에서 순백의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떠올렸을 뿐이다. 고요 속에 의연히 앉아있는 큰 덩치의 백자를.
“그러나 물이 사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 주는 것이 좋습니다.”
표제시 「구관조 씻기기」(14 ~ 15쪽)의 6연이다. 구관조(九官鳥, hill myna)는 사람의 말을 잘 흉내 내는 새로 알려졌다. 시편을 읽어 나가다 나는 ‘탄핵·특검 정국’에서 태극기를 들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소위 이 땅의 애국자(?)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 속에 영혼이 담겨 있을까. 구관조의 사람 말 흉내내기와 닮지 않았는가. 누군가는 대중의 양면성을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조작과 동원이 가능하다고. 구관조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흉내를 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을 민족주의자라고 말했다. 손에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들고. 심지어 미국 대통령 트럼프 초상을 어깨에 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