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헌법의 풍경

대빈창 2017. 3. 6. 05:19

 

 

책이름 : 헌법의 풍경

지은이 : 김두식

펴낸곳 : 교양인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노트하는데 질문하는 학생이 어디 있는가. 그래 뭔가.”

흑판 빼곡히 써내려가던 교수가 등을 돌렸다. 예의 없는 학생이지만, 품 넓은 아량으로 들어준다는 권위가 얼굴에 배어났다.

“학생들이 물고문으로 죽고, 최루탄에 맞아 죽는 시국에 고답적인 헌법 필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상위법을 규정하는 무소불위의 국가보안법의 위법성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까.”

“자네. 무슨 과야, 학번과 이름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오는 교수가 윽박질렀다.

“저는 어용 강의를 들을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습니다.”

강의실 앞좌석에 앉았던 후배들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길쭉한 종합강의실 중간 좌석은 텅 비었다. 학생은 강의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마지막 학기의 부족한 학점을 이수하려 수강 신청한 〈법학개론〉 수업은 그렇게 종쳤다. 같이 수강하던 현장을 준비하던 후배는 중간고사 시험지에 큼지막하게 썼다. 분강(糞講)이라고. 두 학생은 마지막 학기를 남긴 채 각자 공장노동자의 길로 들어섰다. 책장에서 오래 묵은 책 한 권을 꺼냈다.  『알기 쉬운 인권지침』(녹두, 1993). 차례를 뒤적였다. 체포·연행 단계에서의 권리, 진술거부권, 재판절차의 개요, 수배·기소중지·사면·복권 등. 그 시절 나의(헌법의 풍경)이었다.

늦었다.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부터 민주주의를 바라는 평범한 시민까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故 노무현 대통령은 극찬했다. 이제야 잡다니.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초판본이 나왔다. 저자는 날카롭게 비판했다. 몇 년간 허울뿐인 ‘법치’의 이름으로 한국 사회의 법적 현실은 20 ~ 30년 전으로 후퇴했다고. 민간독재 이명박근혜 시대를 살아가는 힘이 없고 가난한 민중들의 삶은 갈수록 참담했다. 책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문화방송 PD수첩 사건, 곽노현 교육감 사건, 대중가요 가사 심의 문제(가수 지아의 ‘감기 때문에’, 아이돌 그룹 남녀공학의 ‘삐리뽐 빼리뽐), 문학·예술의 음란성 문제(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장정일의 내께 거짓말을 해봐, 영화감독 장선우의 거짓말, 만화가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의 증가, 연예인 장자연 사건 등. 저자는 법과 인권에 얽힌 중요 이슈들을 끌어들여 상세히 헌법을 분석했다. 책은 특권의식으로 가득 찬 이 땅의 법조계의 진상을 폭로하고 비판했다.

저자는 사법연수원과 군법무관을 거쳐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초임검사는 누구나 선망하는 이 땅의 특권계급을 1년 만에 스스로 던져 버렸다. 미국유학을 떠나는 아내를 따라갔다. 2년을 전업주부로 지냈다. 노는 물 떠나기가 쉬운가. 저자는 미국 코넬 대학교 법과대학원에서 법학박사가 되었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수로 있다. 분명 접두사를 붙여야 마땅했다. 어용이 아닌 정의와 진실에 선 법학자로.

‘국가의 괴물화를 막아야 할 법률가들이 오히려 괴물이 된 국가 권력의 손발이 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176쪽)한 작태가 이 땅의 요즘 모습이었다.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주범 박근혜 대통령 주위의 공안검찰 출신의 4인방이 불의와 위법을 사대천왕처럼 수호하며 분탕질쳤다. 보수언론마저 이렇게 표현했다. “재(才)는 있으나 덕(德)이 부족하다.” 함량미달인 천민자본주의적 인간형들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불행한 현대사는 아직 진행중이었다. 국정농단의 공범 자유한국당의 대권후보로 점쳐지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지금 더불어민주당 1등 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떠벌였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박영수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직권남용으로 세월호 인양을 방해한 역사적 죄인이었다. ‘왕(王)실장’ 김기춘은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했고, 지역감정을 조장한 ‘초원복집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초대 비서실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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